2023년 계묘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위기를 지혜로 넘긴다는 ‘검은토끼의 해’ 를 맞아 농업·농촌이 처한 위기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농민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하늘’ 과 ‘정부’ 는 농민들에게 무심했다. 연초부터 몰아닥친 냉해와 우박, 폭염, 폭우 등 유례없는 자연재해는 가뜩이나 노동력 감소와 인건비 상승, 각종 농자재값 인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업인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았다. 연초부터 시작된 정부의 인위적인 농산물 가격하락 정책은 연말까지 이어져 농민들의 남은 의욕마저 빼앗고 있다.

농민의 목숨값이라는 쌀값 안정을 위해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휴지조각이 됐고,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발의된 법안들은 정부의 반대로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농업소득이 30년 전보다 낮아졌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농협의 도농상생사업비 납부 의무 부여, 단위농협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등 농협 설립 목적에 맞게 기존 법안의 문제점을 개선한 농협법 개정안은 현 중앙회장의 ‘셀프연임’ 획책으로 인해 해를 넘기게 됐고, 지난 20일 국회 농해수위 농림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농어업회의소법’ 역시 ‘농어민 대의기구 설립’ 이라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정치적 손익계산과 농업계의 해묵은 갈등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있다.

사실상 내년 5월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지는 법안들이다. 현장과 수요자 중심의 농업기술 개발·보급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기반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겠다던 농촌진흥청은 올해 로봇과 AI를 활용한 첨단기술 개발 등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다양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R&D 예산 삭감 조치로 인해 사업을 대폭 축소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다.

돌아보면, 올해는 유례없이 농민들에게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남겼다. 이제 험난한 세월을 함께 헤쳐온 농사 동지들만이라도 서로를 격려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해야 한다. 결국 농촌·농업의 위기는 농민의 힘이 중심이 되어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