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 만난, 지금은 구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한 농업인은“나라를 지키는 군인에게 군복을 입히고 총을 쥐어주듯이, 나라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농민에겐 비료·농약을 줘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농민은 식량안보를 지키는 ‘농군(農軍)’ 으로 봐야 하고 그에 걸맞는 (전투)도구를 무상제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 70~80년대엔 농업교육현장에선 ‘농민=농군’ 이란 말을 흔하게 사용했고,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도 컸다고 했다. 물론 당시에 정부가 비료·농약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았으니 이 농업인의 말은 자부심보단 불만의 뜻이 더 컷을 터다.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초농자재 반값 지원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비료·농약·비닐·사료 등을 구입할 때 비용의 절반을 지자체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자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농지 면적이나 품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일년에 120~15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농업생산비는 폭등했는데 농업소득은 크게 줄어들어, 농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현실을 정부든, 지자체든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현재 강원·충청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고, 경북, 전북, 충남 등 지역 농업인들이 제도도입을 위한 조례 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같은 농업현장 분위기에도, 정부는 최근 발표한 내년 농업예산에서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예산’ 을 전액 삭감했다가 농업계와 국회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예산안 심사 직전에 다시‘내년 상반기에 한 해 일부 예산’만 반영키로 했다.

더불어 면세유와 농사용 전기료 인상분도 상반기에만 지원키로 했다. 다행스럽고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정부의 ‘억지춘향격’ 현실 인식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둔 요란한 정치국면을 비켜 가기 위해 억지로 편성한 임시방편 예산으로 보여서다.

농민은 ‘식량안보의 첨병’ , ‘농군’ 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고, 농업인으로서 자부심보단 수많은 직업의 한 형태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국가적 과업 중 하나는 국가기반산업인 농업을 유지·지속시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230만 농업인의‘생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은 필수다. 기꺼이 정부 곳간을 열어 젖힐 때 진정 환영받는 정부가 될 것임을 염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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