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도직 31년 외길 인생…농업인 육성 애착, 큰 보람
안동 출신, 식품영양학 전공, 지도직 선택
출발점은 1994년 강원 고성군 농촌지도소
태백 근무 거쳐 2003년 김천, 제2의 고향
“양파 기계화 우수모델 육성 조직화 보람”
“여기서 가까운 안동이 제 고향이에요. 1994년 8월 5일, 대학을 졸업하고 지도직 공채에 합격해 강원도 고성군 농촌지도소에 첫 발령을 받았죠. 스물세 살 젊은 아가씨가 옷가방 하나만 챙겨서 버스와 기차를 여섯 번 갈아타고 그 먼 타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이, 제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큰 도전이자 모험이었습니다.”
경북 김천시농업기술센터 권명희 농촌지도과장은 31년 공직생활의 출발점을 되짚어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사나 식품회사가 아닌 농업 분야 공직의 길로 접어든 계기도, 당시 16명의 공채합격 동기 중 절반이 힘들어서 그만둔 사연도 눈물겹다.
안동 일직면 출신이고, 5남매 맏이로, 농사에 바쁜 부모님을 도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밥도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는 낯설고 먼 타향에서의 외롭고 힘든 생활도‘시골’출신 특유의 뚝심과 맏이의 책임감으로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여성농업인은 지역공동체 ‘허리’
권명희 과장은 31년간 농업 공직자로 일하며 농업·농촌의 무한한 가치를 더 절실히 느꼈단다.
“생명을 지키는 기초산업, 환경과 생태 보전, 지역공동체 유지, 문화와 전통 계승, 더 나아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적, 인문학적 가치를 따지면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죠.”
권 과장은 농업인의 의식주, 복지, 문화, 건강 등 전반적인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교육, 행사, 시범사업을 수행해왔다.
생활개선회, 농촌지도자회, 4H 등 농업인 학습단체 육성을 비롯해 농촌 일감 갖기 사업, 건강관리실 설치, 농작업환경 개선, 농촌체험장 조성, 마을 쉼터 조성, 농산물 가공, 치유농업 프로그램 운영 등 웬만한 농촌사회 부문 사업은 빠짐없이 해왔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농업인 교육과 귀농·귀촌 관련 사업은 물론 농업기술센터 청사 교육장 건축과 리모델링, 도농 교류를 활성화를 위한 농촌체험 축제 주관, 동장 등 이력이 다채롭다. 지금은 부서장으로 귀농·귀촌, 농업인 교육, 농업인단체, 치유농업, 농촌자원, 경영마케팅, 농기계 임대와 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업무영역을 묻자 생활개선회 육성이라고 답했다. 대부분 평범한 농촌 여성으로 교육과 행사 참여,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지역사회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단다.
“세대 간, 마을 간을 잇는 농촌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환경정화, 반찬 나눔, 지역축제 참여 등 소소한 활동들이 모여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지탱한다고 봅니다. 여성 농업인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심을 지원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지역공동체의 존속이 지방소멸을 막는 기본임을 깨달았습니다.”
공직자에게 중요한 것은 ‘신뢰’
최근 가장 보람찬 일은 양파 기계화 우수모델 육성사업을 농촌지도과에서 성공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김천은 양파 주산지 중 한 곳으로,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로 인해 인력난이 심각하다. 양파 기계화가 중요한 과제임에도 사업단 구성과 육묘기술, 농기계 임대 등 서로 업무추진부서가 달라 애먹었는데 이를 통합해 추진했다.
“양파 파종부터 육묘, 정식, 방제, 수확 전 과정을 기계화하는 양파 기계화 우수모델 육성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2년간 22억 원을 받아 수행하는 사업이에요. 51농가로 사업단을 꾸리고, 교육하고, 기계 작동과 기술 습득까지 노력을 꽤 기울였습니다. 양파 인력난 해소와 생산성 향상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한 듯해 뿌듯합니다.”
권 과장은 늘 ‘농업인이 나의 소중한 고객’ 이라고 여기며 농촌지도사업을 해왔다고 했다. 농업인 고객 중심에 두고 일하니까 힘든 것 별로 없이 즐기면서 일해왔단다.
“농업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특히 지도직 공무원은 단순히 정책을 전달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인의 삶과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말보다 꾸준한 관심과 행동으로 신뢰를 쌓을 때 지도 행정이 비로소 힘을 발휘하죠.”
권 과장은 현장에 답이 있고, 현장이 교과서라는 생각으로 현장에 자주 나가서 함께 배우는 자세로 일을 해야만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지도직 공무원이 설 자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촌지도자를 비롯한 농업인들의 든든한 동반자로 현장에서 항상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농촌지도자는 농업 발전의 등불이자 중심축으로서, 새로운 기술보급과 선도적 실천을 통해 전체 농업인에게 희망과 방향을 제시해왔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학습과 변화의 자세,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의식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