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본고장 ‘보성녹차’ 이끄는 최영기 명인

흔히들 녹차의 고장하면‘보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파릇파릇한 녹색 잎이 차 밭을 뒤덮는 요즘과 같은 봄철이면 관광객의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보성군은 전국 녹차 생산의 40%를 차지할 만큼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전세계 어디를 내놔도 뒤지지 않는 품질을 자랑한다. 
특히 3대의 걸쳐 보성 녹차산업을 이끌고 있는 보향다원 최영기 대표는 보성 녹차의 ‘핵심’으로 통한다.

 

 


■ 3대 걸친 농부, 녹차는 ‘운명’


“언제부터라는 게 있나요. 그냥 차 밭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농부가 됐어요.” 
보향다원은 보배로운 향기가 가득한 농장이란 뜻이다. 지난 1937년 최영기 명인의 증조부와 조부가 보성의 야산을 개간하며 시작해 벌써 80년이 넘었다. 어릴 때는 차 밭을 놀이터 삼았고 학교에 다니며 부모님 일손을 도왔다.


그러다 지난 1972년 보성농업고등학교(현 다향고등학교) 학생회장 자격으로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한국 영농 학생회 설립식에 참가했다. 총리와 교육부 장관까지 참여한 행사에서‘존경받고 훌륭한 농부가 되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이후 최고의 차를 재배하기 위해 역량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불철주야 녹차와 관련된 연구에 매진한 끝에 지난 2009년 금 녹차와, 금 홍차를 개발했다. 기존 금덩어리나 가루를 뿌린 방식이 아닌 금을 전기분해한 용액을 희석해 뿌리에 뿌려 금 성분이 잎에 배게 하는 방식이었다. 80g에 130만 원이나 하는 고가지만 귀빈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금 녹차 100상자를 선물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최고의 품질을 위해 보향다원은 유기농 생산을 고집한다. 명인의 조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요즘이야 유기농 제품이면 비싸도 찾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벌레와 풀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지금의 믿고 먹을 수 있는 보향다원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지난 2007년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보도한 ‘녹차 농약 검출’로 많은 차 농가가 피해를 입었지만 보향다원은 오히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문에 매출이 대폭 증가했다. 차뿐 아니라 녹차 크래커에 들어가는 밀, 녹차 누룽지의 쌀 등 모든 제품의 재료도 유기농만 사용한다.
  

 

■ 차 즐기던 우리 문화 되찾아야 


“우리 민족은 차를 모든 식물의 왕, 백초의 왕이라 불렀어요. 차례(茶禮)라는 말은 설날과 한가위 때 조상님께 차를 정성껏 우려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죠.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단어를 풀이하면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것처럼 흔한 일이라는 뜻이예요. 우리는 차를 밥처럼 즐기는 민족이었어요.”


명인은 우리 민족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차를 즐겨 마셨음을 강조했다.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된 차와 관련된 유물로 짐작해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상들은 차를 재배하고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의 차 문화가 사라졌다. 제사상의 차는 술로, 식사 후는 커피를 마시는 게 당연시됐다. 우리 차가 점점 잊히는 상황 속에 최영기 명인은 국내 차 농가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전통차인 띄움 차를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띄움 차는 쉽게 설명하면 미생물 발효차다. 주변의 미생물을 차에 발효시켜 만든다. 


아직 기초 연구 단계지만 띄움 차에 노화를 억제해 주는 항산화 효과가 다른 차에 비해 매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국제 학술지에 띄움 차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대학과 연구 중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 차 산업의 성장은 더디기만 하다. 

 

■ 세계에서 알아주는 ‘보향다원’


연간 2만 명의 외국인이 보향다원을 찾아 직접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체험학습을 한다. 한국과 한국 차의 우수성도 함께 가르치며 명인은 문화 홍보대사 역할도 자처한다.
지난 2015년 5월, 원전 본 계약 체결 차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한 아랍에미리트의 국빈 일행도 보향다원을 찾았다. 먼저 보향다원에 다녀간 공주 일행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인당 연 2,800g(한국은 60g)의 차를 소비할 만큼 차를 사랑한다. 처음 보는 차밭과 체험학습에 일행은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계약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향다원이 국익에 톡톡히 기여한 셈이다.


차에 관해 자부심이 높은 중국에서도 명인의 이름은 유명하다. 22개국이 참가한 광저우 국제 차 박람회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0만 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가며 6개월을 준비한 결과 참가자의 높은 관심은 물론 금 녹차는 박람회 추천 상품으로 선정, 광저우 TV 뉴스에도 집중 보도됐다. 차에 관해 가장 명문인 중국 절강 대학에서도 3년째 교수와 학생이 명인에게 강의를 듣기 위해 보향다원을 방문한다.

 

 

■ 우리 차 문화 세계에 알릴 터 


적극적인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해 미국, 유럽, 일본 인증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할랄 인증까지 받았다. 이미 일본과 띄움차 수출 계약을 협상 중이고 한중일 최고급 차 선물세트 제작 또한 진행 중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수작업으로 하던 공정도 자동화해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두 아들도 스스로 다원에 합류해 힘을 보태고 있다. 큰아들 준용 씨는 법학과를 졸업하고 영어, 일본어에 능통해 해외 판매와 전시회를, 둘째 준성 씨는 전공인 컴퓨터 공학을 활용해 스마트 농장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최 명인의 폭넓은 차에 관한 지식에 자식들의 젊은 감각이 더해져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 많은 차들도 개발됐다. 차밭에서 하는 팜웨딩, 다양한 연령층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 자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5대째 내려오는 농장입니다.”말하는 명인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많은 사람이 다성(茶成:차로서 이룬다)이라는 호로 불러주지만 아직 이룬 게 없어 부끄럽다는 명인. 세계를 무대로 한국 차의 향기를 널리 퍼트리고 차를 즐겨 마시던 우리 민족의 차 문화를 되돌리는데 부단히 노력하는게 명인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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