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열 방제체계’ 사과 약제 획기적으로 줄인다

 

[농업인신문·신젠타코리아 공동기획]     경북대 교수 퇴임까지 30년, 지금까지 치면 40여 년‘사과’외길인생이다. 1981년 조교수 부임 전 사과나무 부란병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 동경농업대학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더하면 50년이 넘는다. 평생이다. 경북 청송 사과원에서 만난 엄재열 박사는 언뜻 사과를 닮아 보였다. 사과와 한 몸이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제체계 믿고 지키는 곳 효과 톡톡히 봐”
“약제사 ‘영업’ 에 과다사용 관행 못 벗어나”
“배 방제법도 곧잘 세웠는데 사장돼 아쉬워”

 

 

사과 병 방제체계 연구개발 40년 외길
부란병 방제법 개발로 기사회생 길 터
화상병 포함 과원 저농약 살포체계 완성
경북대 교수 퇴임 후에도 현장강의 쇄도
청송에서 실험연구 겸 사과원 직접운영

 

 

방제법 강습회에 2천 명씩 몰려


엄재열 박사는 2010년 퇴임 후 본인의 청송 사과원에서 시험연구를 이어왔다. 한 고랑에 25∼30그루씩 39개 시험구역에 후지, 시나노골드 품종 등을 가꾸며 재배 이력과 방제력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천직이 학자이고 연분이 사과인 그의 인생은 2막도 같았다.


“부란병은 우리나라 사과 산업을 뿌리째 뽑을 기세였죠. 연구비가 적어 실험대도 직접 만들 정도로 열악했지만 3년여 만에 부란병 방제법을 개발했습니다. 다들 기사회생의 길을 텄다고, 이제 이겨낼 수 있다고 평할 때 뿌듯했습니다. 당시 방제법 강습회를 하면 2천여 명씩 모여들었죠.”
가지가 말라 죽는데 그 방제법을 몰랐던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엄 박사 논문 두 편이 세계적인 식물병리학회지에 실리고 1990년대 초 미국 버펄로대학교로부터 공동연구 제안과 초빙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날 수 없었다. 경상북도에서 사과 수출을 추진하면서 방역·검역체계 수립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낙과와 썩음병을 잡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5년간 매달려 찾아낸 방제법은 이후 사과 방제체계 완성의 밑그림이 됐다. 붉은별무늬병, 점무늬낙엽병, 갈색무늬병, 겹무늬썩음병, 탄저병, 그을음병, 과심곰팡이병, 부란병, 날개무늬병, 역병과 화상병 등 사과에 발생하는 주요 병의 발생생태와 방제방법을 찾아 최적의 방제전략을 짜는 일이 엄 박사의‘큰 그림’이었다.

 

‘엄재열 방제체계’ 이름짓기에 겸손


엄 박사의 사과 병 방제체계는 약제의 과다사용과 오·남용을 막고 알맞은 약제를 적기에 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기별 또는 사과 병 생태에 근거해 가장 적절한 약제를 배치하고, 연간 방제전략에 따라 체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면 약제 살포횟수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개화 전부터 5월 초·중순까지 갈색무늬병에 집중하고, 오뉴월엔 갈색무늬병과 탄저병, 7월 이후 탄저병, 8월 겹무늬썩음병 방제에 중점을 두는 식이죠. 그렇게 연간 10회, 추이에 따라 12회까지 방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방제체계에 따르면 4월에 화상병과 갈색무늬병 예방을 위한 보르도액, 5월 상순 낙화기 겹무늬썩음병 대비‘미래빛’과 옥솔린산 혼용, 5월 중·하순과 6월에 갈색무늬병, 붉은별무늬병, 그을음병, 점무늬병에 맞는‘아미스타’같은 약제, 7월 하순까지 탄저병과 갈색무늬병에 집중한‘아로빈’등의 약제, 8월 하순 마지막 약제로 탄저병과 갈색무늬병에 맞는‘아리미소진’과‘머판’등이 제시됐다.


엄 박사는 사과원의 저항성 발달 여부에 따라, 중생종·만생종 등 품종에 따라 살균제 살포체계를 달리해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약제의 저항성 문제를 강조했으나 농가는 물론 사과 전후방산업 종사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약제 저항성 문제는 2019년경부터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 됐다.


완성한 방제체계에 이름을 걸어‘엄재열 방제체계’로 명명할 만하다고 하니 겸양했다. 딱히 이름을 걸지 않아도 엄재열의 방제체계를 아는 이는 다 안다고 했다. 지금까지 500회 넘게 현장 강습회를 다녔다니 그럴 만도 하다.


“청송 현서면이나 최동로 전 원예과학원장이 있는 포항 죽장, 영양군 사과연구회, 전남 장성지역 사과연구회 등 제 방제체계를 믿고 지키는 지역의 농가들은 생산성과 저농약체계에 만족해합니다. 약제사의 ‘배달’ 영업과 관행에 따라 약을 줄이지 못하는 농가가 여전히 많다는 현실이 안타깝죠.”


엄 박사는 인근 봉화군 탄저병 다발농가의 약제 살포기록을 내보였다. 살균·살충, 영양제를 포함한 약제비용은 올해 3월부터 9월 초까지 13회에 걸쳐 184만4천 원에 달했다. 이후 몇 번 더 뿌린다고 가정하면 200만 원이 넘을 것이란 예상이다.


엄 박사가 아쉬워하는 일이 더 있다. 울산이 고향인 그는 배 방제체계를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랏돈으로 연구에 매진해 나름대로 결과물을 내놨는데 사장돼버린 것이다. 울산, 나주 등 배 주산지를 수없이 오가며 연구하고, 최종 6회 약제 살포라는 획기적인 체계를 수립했는데 외면당했다고 했다. 농약 생산과 유통에 간여한 조직들의 철옹성을 실감한 쓰린 기억이다.


엄 박사는 사과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몇 가지를 꼽으며 쓴소리를 했다. 구체적이다. 착색한다고 잎 따는 것, 열매 밑동까지 빨갛게 한다고 과원에 반사 필름 까는 것, 상품성 높인다고 사과 꼭지 쳐내는 것을 ‘금지사항’ 으로 제시했다. 노동력과 비용만 더 들고,‘열매의 진실’을 속이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