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나고 날씨가 차분합니다. 바람이 순하고 파란 하늘은 드높아서 구름이 붓칠한 듯 희고 가볍습니다. 어스름해질 때마다 울어 예는 귀뚜라미도 가을 문턱에서는 목청이 높았는데, 이제는 잔잔한 바다 물결처럼 곡조가 얌전하군요. 


차분하고 얌전한 가을. 기다렸던 철입니다. 봄보다 가을이 마음에 듭니다. 오는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는 것들을 위한 고즈넉한 시간과 공간이 펼쳐집니다. 외출 전에 옷매무새를 다듬는 마음가짐이 산과 들에 그득한 철입니다. 사람은 영 가버린다는 것에는 불안하고 두려움을 가집니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회복하지 못할 상실로 이해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은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지 않고 가는 것이 없듯 가지 않고서야 또 무엇이 오겠습니까? 머잖아 스러질 무수한 한해살이풀들을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깨알 같은 씨앗들로 새 삶을 기약하는 풀들 말입니다. 단단하고 실팍하게 약속이 여무는 계절입니다.


 가을에 스러지는 것들이야 저대로 갈 때가 되어 가는 것이지 누가 보낸다고 가는 게 아닌 데도 아내와 저는 배웅하는 자세를 잡게 됩니다. 산과 들의 풀과 나무보다 밭에서 길러낸 토마토와 고추가 먼저 기력이 쇠하는 것 같습니다. 가을 수확을 기대하고 느지막이 심었던 토마토는 며칠 일교차가 크자 이파리가 확연하게 작아지는군요. 고추는 빨갛게 익는 속도가 더디고 꽃도 더 들지 않습니다. 열매도 움츠려 크지 않는 것 같고요. 이런저런 울타리 콩 이파리 마르기를 기다리는 아내가 문득 이럽니다.


“이거 세월 빨리 가라는 거지, 호호.” 글쎄 말입니다. 농사짓다 보면 어서 빨리 시간이 가라고 부채질을 할 때가 많은데요. 그 세월에 우리 부부도 따라 늙어가는 것 되새길 여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9월 중순. 고추 따다가 말고 아내가 자꾸 뒷산을 봅니다. 때가 된 것이죠. 봄에는 고사리, 가을에는 버섯. 아내는 그 너른 품에 안은 것들을 탐냅니다.

“무슨 소리야. 버섯보다 알밤이지, 그럼.” 아내가 뒷산 초입에서 주어 올 알밤은 꿀밤입니다. 잘 익은 밤은 초저녁 보름달처럼 노란빛을 포슬포슬하게 피어납니다. 그런 밤을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하다 보면 가을이 깊어집니다.

아내의 욕심 탓에 미처 먹지 못하여 남겨진 것들에 벌레가 슬 즈음이면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불겠습니다. 산기슭 다문다문 피어났던 고들빼기 이파리가 서리 맞아 누렇게 이파리가 바래고 사위는 철입니다. 또 그것을 몇 뿌리 캐어다가 아내는 고들빼기 김치를 담을지도 모르겠군요. 


“누가 다 캐 갔어.”이러면서 말입니다. 아내는 덤바우 뒷산에 나는 것은 모조리 제 것라 여깁니다. 그래서 수확이 신통치 않으면 도적질 당한 것처럼 분해합니다. 마을 할머니들도 그러는 것 보면 우리 뒷산은 우리 마을 모두의 뒷산인 모양입니다.


 “우리도 송이 따러 갈까?” 아내가 이러며 헤벌쭉 웃는군요. 뒷산 더 멀리 더 깊은 곳에 가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버섯인데요. 눈썰미 없는 우리 부부는 정처 없이 떠돌기 일쑤인데도 송이 캐기를 하자며 저를 꼬드깁니다. 제가 처음으로 송이를 대면하고서 했던 말을 아내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봐. 이거 송이랑 똑같이 생겼네. 그치?” 그게 송이버섯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발견한 송이가 송이처럼 생겼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산에는 송이보다 맛있는 버섯 천지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굽더덕이 버섯(흰굴뚝버섯)입니다. 오이꽃버섯, 가지버섯, 밤버섯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독 있어 위험한 것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것이 많은데도 아내는 이런 것들을 귀신같이 잘도 가려냅니다.


 며칠 후면 못내 안달이 난 아내가 ‘산이 부른다.’ 고 탄성을 지르며 산으로 향할 것입니다. 먼 곳은 함께 갈 것이고 지척은 달아나듯 아내가 홀로 가겠죠. 다리 저리도록 걸어 뒷산 가장 높은 봉우리, ‘눈가리’까지 함께 오르고 싶습니다. 덤바우를 굽어보며 우리 부부의 지난 자취가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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