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농사짓는 농가가 많이 줄어 주산물이라 부르기 무색하지만, 우리 마을만 놓고 보면 주산물은 감자와 콩입니다. 한때 고추가 주력이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사라져 자급용으로도 기르지 않는 실정입니다. 고추를 대신한 것이 양파입니다. 감자와 콩에 이어 우리 마을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작 두어 농가가 짓는 양파 농사인데요. 비교적 젊은 농민들이 꽤 큰 규모로 재배하고 있어 우리 마을 부산물이라 불러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 양파는 품질이 무척 좋습니다. 이는 덤바우 부부가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 여러 해 직거래로 형성된 소비자들의 의견이 그렇습니다. 의외로 도시인들이 양파나 감자 수확기에 한 망 이상 대량 구매하여 오래 두고 소비하는 식생활을 하는 패턴이 있더군요. 그러자면 저장성이 중요한데, 우리 마을 양파는 저장성이 뛰어납니다. 특히 저장성 높은 품종을 재배하지 않는 데도 그렇습니다.

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보면 우선 마을의 지형적 위치가 고랭지에 가까워 고온기가 짧고 비교적 일교차가 커서 과육이 단단한 것 같습니다. 평야 지대의 재배에서는 물 공급을 많이 하는데 우리 마을 양파는 상대적으로 물 공급이 적은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사용하는 비료의 종류와 사용량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충분한 퇴비 투입으로 토양에 유기물이 풍부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우리 마을 양파를 차돌멩이 양파라고 부릅니다. 소비자들에게도 그리 소개합니다.‘우리 마을 차돌멩이 양파 드셔보세요.’ 이렇게 대놓고 광고합니다. 7년 이상을 그리 홍보했는데 이런 광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비자는 없었습니다. 우리 마을 양파는 자타공인 차돌멩이 양파인 셈입니다. 이른바 유기농으로 소량 재배하는 덤바우 양파와 견주어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풍미’가 각별한 것이죠.


 이런 우리 마을 양파가 올해 흉작입니다. 양파를 아주심기 하던 때에 이른 추위가 와 초기 생육이 안 좋았던 데다가 겨울에서 봄까지 이어진 극심한 가뭄 탓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전국의 주 재배산지도 사정이 비슷해 양파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이겠죠. 양파 농민과 직거래 가격을 정하면서 혼선이 생긴 것도 가격 급등 때문입니다. 제 의견은 지난 여러 해 양파 가격이 급락했을 때에 비교적 높은 소비자 가격을 정했으니 올해처럼 급등했을 때 인상 폭을 줄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직거래만이라도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자는 주장입니다. 


 아내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흉작으로 수량이 줄었으니 지난해에 견주어 양파 가격 상승분을 지탱해주지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는 폭락은 아니더라도 가격이 상당히 낮게 형성된 해이기 때문에 지난해 가격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설왕설래하다가 양파 농민과 삼자대면해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로 했습니다. 논일하던 그를 찾아갔습니다.

“모내기는 이미 했잖아?”“풀 뽑아요.”씩 웃으며 양파 농민이 대꾸합니다. 잘 웃는 농민입니다. 실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난감한 일이 워낙 많이 생기는 농사일이라 생긴 습관 같습니다. 아내가 날도 뜨거운데 대낮에 무슨 김매기냐고 걱정하자“재미로 하는 거지요.”라고 답합니다.

“아이고, 울 남편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내는 저를 걸고넘어집니다. “내가 뭘...” 제가 말을 이을 사이도 없이 아내는 제 ‘안정적 가격론’ 을 공격합니다. 듣는 농민은 계속 웃기만 하고요. “차라리 직거래 관두고 상인한테 모두 넘기는 게 올해는 나을 것 같네, 그치? 직거래는 번거롭기만 하고 실속이 적잖아,” 속 시끄러워 보여 제가 위로 삼아 이렇게 말하자 농민이 정색합니다. “매년 먹던 사람들은 어쩌고요!”


 가격을 정한 다음 농민의 의견을 들어 우리 마을이 오지라고 잘 들어오지 않는 택배사를 설득해 들어와 싣고 가게 하기로 했습니다. 양파 개별 포장하자면 고생이겠다고 인사치레했더니 또 “재미있잖아요.” 합니다. 덤바우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그러더군요. “재미는 무슨... 착잡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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