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곡괭이 든 농부였다가 저녁에는 붓을 든 예술가로 변신! 농사일이 끝나면 길안면 주민들의 제2의 하루가 시작된다. 힘차게 밭일하던 손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물감을 칠한다. 하얀 종이 위에는 알록달록 생기가,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돈다.

 

 

 

한적한 길안면의 저녁 풍경이 달라진 건 민화교실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안동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는 2017년도에 처음으로 민화교실을 운영했다. 민화교실은 여가 생활을 즐길만한 거리가 부족했던 길안면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박인옥 센터장은 민화교실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2018년도부터 농촌 교육·문화·복지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민화교실과 서예교실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느덧 4년 차에 다다른 두 프로그램은 주민들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 


농한기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예를 연습하고, 8폭 병풍 초충도(풀과 풀벌레를 그린 그림)에 도전하는 등 주민 스스로 역량을 갈고 닦는다. 매주 저녁을 함께 보내 마을 분위기는 덤이다. 


종이와 섬유에 그림을 본뜨고, 물감을 배합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굉장한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다들 손끝에 신경을 집중한 채로 붓을 움직인다. “민화 그릴 때는 숨도 살살 뱉어야 해.” 어르신의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터져 나온다. 서예교실에 참여하는 주민들도 한 자 한 자 심혈을 기울여 문구를 써 내려간다. 

 

 

필력을 기르기 위해 한글·한문 서체별로 지도가 이뤄지고, 과제물 점검과 피드백도 주고받는다. 


프로그램 활동에 숙제까지 피곤할 법도 하지만, 주민들은 붓을 잡는 순간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실력과 성과물도 강력한 동기부여다. 


가족들에게 지지와 존경을 받을 때면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이면 주민들이 붓을 드는 이유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작품과 더불어 이웃 간 정도 쌓인다. 2019년도에는 직접 민화를 그려 넣은 가방을 지역 내 이주 여성들에게 선물했다. 연말에는 농협 로비에서 서예 작품 전시회를 열고, 서로의 작품을 칭찬하며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의 서예와 민화 실력이 날로 출중해지며, 추후 주민들끼리 자체적인 수업이 가능하도록 강사 육성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 길안면의 저녁은 낮 못지않게 밝고 활기차다.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는 민화처럼 길안면 주민들은 서로 어울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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