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부터 계속된 가뭄 탓에 초여름의 대표적인 제철과일인 자두, 특히 조생종인 대석의 씨알이 영 작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가 직거래를 돕는 자두농민께서 전화하시면서 ‘콩자두’ 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허허 하며 실소를 흘리는데 아내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 먹는 이들이 그러는 것이야 당연할 수도 있지만 고생해서 그만큼 키우신 보람을 비하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라 악조건의 날씨를 미리 견딘 과일이라 사람한테도 더 좋은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자두농민께서는 저처럼 허허 웃고 마십니다.


 우리 부부의 첫 농사는 자두였습니다. 처음으로 덤바우 선보러 왔던 날은 한겨울이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온 밭이 희끗희끗했습니다. 비포장 농로를 사이에 두고 비탈 밭 여럿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밭에 제법 나이든 나무들이 다문다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시 촌놈이라 과일나무이겠거니 하면서도 정작 무슨 나무인지는 몰랐습니다. 덤바우에 터 잡으면서 그 나무, 자두나무들도 물려받았으니 자연스럽게 자두농사를 짓게 된 거죠. 마을 분들이나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나게 된 자두농민들은 한결같이 자두농사는 쉽다고 해서 그렇거니 했습니다. 그렇지 않더군요. 지금도 아내와 저는 함께 가지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톱을 들고 나서면 두 사람이 딴 판입니다. 시작은 좋게 토론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멀쩡한 자두나무를 난도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톱이 나뭇가지 하나 못 썰고 철수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유일하게 아내와 의견일치를 본 것은 화학농약 안 치기였습니다. 주변의 농민들에게 화학농약 대신 칠 천연 농약을 수소문했더니 대뜸 미쳤냐고 하더군요. 


“상추도 벌레를 타는  판국인데!”그 분의 이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 부부는 여러 해를 거듭 농약 없이 자두농사를 지었습니다. 워낙 조생종이어선지 대석은 병충해를 덜 타서 어찌어찌 할 만했습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친환경 농법도 많이 익혔습니다. ‘생태’ 를 중시하는 다소 과격한 농법에도 잠시 경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탓인지 특히 해충 피해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해 열심히 공부하여 얻은 지식과 경험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더군요.

“고추는 어찌 되는데 과수는 안 되는 것 같아.” 제가 이렇게 푸념했더니 아내가 그러더군요.

“안 되는 건  아니지.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거지.” 가운 빠진 제게 이런 방망이를 휘두르는 게 서운해서 뭐라 그랬더니 아내가 또 이랬습니다. “요즘은 애들도 괜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더라.”
 

그런데 자두농사를 걷어치울 핑계가 생겼습니다. 한해 터울로 냉해가 심하게 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과수 꽃이 한창 피고 결실을 맺는 시기에 심한 저온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덤바우는 유독 심해서 고추 아주심기를 5월 중순에 하는 지경입니다.


“흥, 그래도 나무를 다 베지는 않을 거야.” 아내의 이 말에는 저도 찬성이었습니다. 거의 십여 년 들인 공이 아깝기도 하고, 어떻게든 재배방식에서 성과를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작심은 밭농사로 바쁜 아내는 몰라도 저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습니다.


 틈틈이 아내가 돌봐서 그런지 올해 자두 작황이 좋습니다. 이삼십 주 정도 되는 나무들에 달린 열매가 실합니다. 알 솎기 하는 아내를 따라 다니며 보니까 대석보다 홍로센 품종이 기세가 등등하군요. 


“그거 봐. 옛날에는 천덕꾸러기였는데 이렇게 좋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내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잠시 회춘한 것뿐이겠지요. 그랬더니 아내가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자두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제가 나무에게 미안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얘들처럼 옹골차게 결실 좀 맺어보시라고, 앙?”미안하지는 않아도 잠시 부끄럽군요. 저 자두가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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