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질하는 사이 땀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집니다. 아내가 챙겨둔 손수건을 목에 묶고 나왔어야 했는데 잊었군요. 맨손이나 옷깃으로 땀을 훔쳤다가는 이내 얼굴이 따끔거립니다. 흐르는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얼마 전에 비가 왔는데도 밭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괭이를 찍을 때마다 먼지가 폴폴 납니다. 저 먼지가 얼굴에 묻어 땀과 함께 범벅되니 그걸 훔칠 때마다 얼굴이 까슬 거리고 이내 따끔따끔 아픈 것입니다. 찬물도 마실 겸 손수건을 가지러 농막으로 가야겠습니다.


 ‘흠, 한 이랑만 끝내고 가자.’사방에 널린 게 일이라 바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치레 삼아 매조기를 해나갑니다. 문득 구름이 해를 가려주고 바람이 살짝 불어주어 땀이 식는 듯도 합니다. ‘내친김에 비닐도 씌우는 것도 좋겠네.’ 주섬주섬 삽으로 갈아 쥐고 새까만 비닐을 이랑에 가로질러 놓습니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방금 다듬어 놓은 기다란 이랑을 저 끝까지 가늠합니다. 옆 눈길로 새어드는 다듬어야 할 이랑들이 먼저 보이는군요.‘게으른 농사꾼이 이랑 헤아린다’ 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제가 딱 그 짝입니다. 기운이 쏙 빠집니다. 삽을 내던지고 농막으로 가려다가 마음을 다잡습니다.

‘게으른 머슴은 칠월이 바쁘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사실 제 눈앞에 놓인 밭은 무경운 5년차의 꽤 너른 밭입니다. 지난 늦가을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둔 탓에 ‘무’자가 무색해졌습니다. 듬성듬성 보리와 밀을 심었던 것 빼고는 그저 내버려 둔 바람에 성가신 일이 많아졌습니다.


 “막무가내로 안 한하면 무조건 좋아지나?” 아내가 가끔 제 고집을 꺾을 때 쓰는 말입니다. 언제나 경제성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내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내 스스로 그 원칙을 잘 실천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제 계획이 경제와 효율에 어긋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지적합니다. 그럴 때마다 얄미워서 적발해둔 아내의 불철저함을 들어 반격을 퍼붓기도 합니다. 잠시 덤바우라는 배가 산으로 가는 순간입니다. 그 와중에도 경제와 효율은 우리 부부 농사 제1의 덕목이어야 함은 변함없습니다. 비닐 깔다 말고 풀 무성한 이랑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합니다. 봄날 하루가 여름 한 달이라는데, 이른바 효율을 높이자면 이랑을 갈아야겠습니다.

“뭐해?”언덕길을 올라가던 아내가 말을 건넵니다. 워낙 한꺼번에 하는 일이 많아져 흩어져 다니다 보니 남의 밭 참견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얼굴 보기 어렵네. 거, 뭐냐, 개가 주인한테 짖어야 바쁜 농사꾼이라더라.”“나더러 짖으라고?” “꼬리를 치던가.” 잠시 들렀다 가라 해도 아내는 웃으며 윗 밭으로 갑니다. 거기는 거기대로 일이 산더미입니다. 온갖 나물 밭 추슬러야 합니다. 두메부추, 산부추, 당곰취, 곤달비, 땅두릅에 곤드레, 명이나물 등등 아내의 욕심이 가득 찬 곳입니다.


관리기를 끄집어내어 무경운 밭을 부분 경운 밭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아쉬운 감이 있으나 올가을 찬찬히 정돈하면 내년부터는 원하는 대로 꿈꾸던 대로 운영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중단 없는 전진은 추락이라고. 역시 기계의 위력은 셉니다. 쟁기질보다는 백 배 낫군요. 시간을 많이 벌었습니다. 힘도 덜 들고 그럭저럭 밭 본새도 갖추었습니다. 그래도 모두 마치려니까 해가 짧군요. 슬슬 비닐하우스 모종 살피러 가려는데 아내도 내려옵니다.

“앵초꽃 피었네, 볼래?”지난해 덤바우에 처음으로 들인 꽃입니다. 아내가 죽었나 살았나 늘 궁금해하더니 잘 살아 꽃을 피웠군요. 꾀꼬리 울 때 피는 꽃이라는데, 요즘 덤바우 새들 소리 요란해도 저는 가려듣는 재간이 없습니다.

“그냥 앵초꽃 피더니 꾀꼬리 울었다, 이렇게 생각하라니까.” “거짓말하라고?” “아, 이 넓은 덤바우 뒷산에 꾀꼬리 한 마리 없겠어?” “무슨 소리야. 이렇게 더우니까 여름이라고 우기면 되겠어, 안 그래?” “나 참, 저기 두릅 봐. 나자마자 쑥 자라서 쇠고 있잖아. 먹겠나 싶다. 딸 시간도 없는데.”고단한데 두릅 따자고 나설 것 같아 대뜸 외쳤습니다. “뭔 소리! 눈이 펄펄 내려도 봄은 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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