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농가 병아리 입식 엄두도 못내
턱없는 보상금 기약없고, 병아리값 2~3배 올라

정부의 무차별 살처분이 결국 화를 불렀다. 고병원성 AI 조기 종식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부의 방역지침은 3km 울타리내 양계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특히 피해가 심각한 산란계의 경우 이번 AI 사태로 187농가에 1,700만수가 살처분 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살처분 보상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입추도 못하는 농가가 태반이다. 심지어 보상금이 얼마나 책정됐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언제 지급될지 기약도 없다. 정부는 이 와중에 계란가격 안정화를 이유로 미국과 태국에서 계란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책없이 파묻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수입계란으로 호들갑 떠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아 5개월째 텅텅 비어 있는 계사.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아 5개월째 텅텅 비어 있는 계사. 

 


무차별 살처분 대책은 결국 계란수입

산란계 산업은 평상시 전체 사육 마릿수가 8,000만수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일 4,500만개 내외의 계란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AI 사태로 인해 1,700만수가 살처분 됐다. 매일 500만개 이상의 계란이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금단체들은 무차별 살처분으로 인해 심각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정부의 방역정책 개정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조를 유지했다. 더욱이 정부는 살처분 농가들이 정상적으로 입추에 참여한다면 6월말부터는 계란 수급이 정상화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7월 현재까지도 계란 수급은 나아질 기미조차 없다. 이는 정부가 제때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지 못한 탓이 크다. 더구나 전국에서 산란계 병아리 부족현상이 발생해 가격이 3배 가까이 올랐다. 결국 보상금을 받지 못한 농가들은 비싼 병아리값에 입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이번 AI 사태로 187농가가 살처분 됐지만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받은 농가는 단 한곳도 없다. 그나마 일부 농가에서 40% 지급 받은 것이 전부다.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사유에 대해 정부는‘예산 부족’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란 부족으로 계란값 인상 조짐이 보이자 결국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계란 수입이었다. 가금단체들은 무차별 살처분 중단 목소리를 외면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수급을 핑계로 ‘계란 수입’을 하겠다는 정부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계란 수입이 능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계란 수입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미 6월말까지 혈세 400억원을 쏟아 부은 것도 모자라 12월까지 수입계란에 대한 관세를 0%를 유지해 계란을 수입하겠다는 것이 정부 기조다. 12월까지 수입계란에 투입되는 혈세는 1,3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살처분 농가들은 예산 타령으로 보상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계란 수입에 혈세를 아낌없이 쏟아 부은 정부가 과연 정상이냐고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더구나 국내 계란에는 소비자 안전을 이유로 산란일자표기, 선별포장업 등 갖가지 제도를 도입해 농가, 유통인들을 압박하면서 수입 계란에는 모든 빗장을 풀어줘 스스로 비난을 자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의 유통기한은 45일로 권장되고 있다. 또한 국내산 계란에 대해서는 산란일자 표기, 세척계란 10℃ 이하 유통, 연 2회 이상 안전성 검사 등 엄격한 품질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수입계란에 대해 정부는 안전성 관리에 대해 통 크게 완화했다. 계란을 포함한 축산물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수출국의 생산기반, 안전성 및 위생 관련 내용 등이 명확히 확인돼야 하지만 정부를 제외하곤 확인할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계란이 부족 현실에 기름을 부은 것은 산란일자표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국내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산란일자표기는 산란일 1주일을 기준으로 신신란을 삼는 기이한 제도로 변질됐다. 결국 산란일로 1주일이 지난 계란은 유통 시장에서 외면하면서 계란 부족현상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이다. 누굴 위한 제도이냐는 강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산란계농가, “‘사람’중심 축산정책 펼치길”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21만수의 산란계농장을 운영하는 대한양계협회 김양길 전남도지회장은 지난 4월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고 21만수 산란계를 살처분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터라 살처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이후 정부 조치는 실망 그 자체였다. 4개월이 다되도록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아 입추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병아리 가격은 물론 중추 가격이 3배 가까이 오른 터라 가진 돈으로는 입추는 딴나라 얘기로 들린다.  


김양길 도지회장은“살처분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가들이 신속하게 재기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줘야 하는데 돕기는커녕 아예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는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면서“농가들은 닭을 키우는 것이 생업인데 보상금 타령만 하는 현실에서 무슨 희망을 품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15만수 산란계를 키우는 황승준 씨는 지난해 12월 애지중지 키우던 닭들을 살처분 했다. 피해액만 12억원이 넘었다. 


7개월이 지난 황 씨는 최근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40% 정도 받았다. 보상금은 곧장 입추 준비하는데 투자됐다. 그러나 값이 너무 오른 병아리값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결국 보상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대출까지 받아서 간신히 입추를 끝냈다. 


더 큰 문제는 12억원 피해액을 보상받기 위해서는 농가가 직접 피해액을 증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료값부터 인건비까지 농가가 증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황 씨의 경우 20~25% 가량 삭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황 씨는 “지난해 시세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한 것도 현실과 동떨어져 손해가 큰데 그마저도 농가가 피해액을 증빙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아야 한다”면서 “계란 수입으로 소비자들에게 칭찬을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부 외면으로 피눈물 흘리고 있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제발 귀담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도지회장은 “정부의 정책은 당연히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축산정책은 사람이 아닌 가축에 집중된 탓에 헛발질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람이 살아야 축산업이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정부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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