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꽤 먼 곳에 사는 처남들이 자주 오는 편입니다. 모종 심는 일을 거들기도 하고, 지난해 새로 지은 농막의 마무리 작업을 맡기도 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자는데 너무 자주 오는 것 아니야?”


짐짓 이렇게 말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낍니다. 온 세상이 역병에 속수무책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입니다. 온 세계가 전방위적인 차단과 격리, 봉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숨지는 이들이 속절없이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사람들 대부분이 곤란을 겪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이러스 창궐이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여 일상적인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처남들의 방문이 반가운 겁니다.


우리가 늘 하는 습관적인 생활을 통틀어 일상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는 눈을 뜨자마자 커피 물을 끓여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일과를 정리합니다. 격식 없이, 순서도 없이 얘기하다 보면 어제의 성과를 따지게도 되고, 어쩌면 어설프게 내년의 계획도 몇 마디 얹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소하고 무의미한 커피 타임이지만, 거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일터로 나가게 됩니다. 거른다고 일을 그르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슨 커피를 석 잔씩이나 마셔?” 가끔 게으름이 나면 저는 ‘한 잔만 더’를 외치며 흰소리를 더 늘어놓기도 하거든요. 하루도 걸러서는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일하기 전에 밭을 한 바퀴 돌며 상태가 어떤가 살펴보는, 제가 이름 붙인 ‘순회공연’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실제로 노래도 흥얼거립니다. 이 역시도 가끔 떼어먹는다고 탈이 나지는 않는 일입니다만, 우리 부부는 꼭 해야 할 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농민들처럼 때맞추어 식사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수확이 한창일 때에는 시간에 대야 하기에 번번이 때를 놓칩니다.


얼치기 농사꾼 시절에는 온종일 굶은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럴 때가 있으니 얼치기 허물을 아직 벗지 못했나 봅니다. 농사짓기 시작한 첫 몇 년은 그야말로 헐벗은 생활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장모님께서 부랑자들 같다고 했을까요.


“어머니, 피난민이라면 몰라도 거지 같다고 하시면 안 되죠.”
제가 이렇게 눙치면 장모님께서는 세수 안 하는 것, 더러운 옷, 제멋대로 자란 수염 등등을 열거하시며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항상 평상심을 가지고 일상적인 생활을 스스로 흐트러트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장모님 말씀대로 하려고 애썼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습관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키지 못하는 항목이 많습니다. 어느 해인가, 아내와 대판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해거름이 되자 일에 녹초가 되어 농막에서 좀 쉬려는데 아내가 빨래하는 겁니다. 피로가 좀 풀리는 내일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더군요. 빨래에 이어 설거지까지 한밤중에 하는 걸 보고는 제가 성이 났습니다. 아내도 덩달아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안 하면 쌓이는 거 몰라?!” 그렇죠. 일상생활에서 거르면 쌓이는 일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가족들이나 친구, 이웃들과 만나는 게 가장 즐거운 일상입니다. 밭에서 일만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물기 없이 단순하게 굳어버리고, 몸은 힘든데도 권태가 쌓입니다. 전례 없이 ‘거리 두기’가 미덕인 시절이라 답답합니다. 그 갈증을 처남들이 가끔 풀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가족끼리는 형편과 처지를 굳이 따지지 않고도 화목할 수 있어서 편안합니다. 가끔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으니 마음이 늘 트여 있는 기분입니다. “담에는 뒷산 가서 두릅 다 따옵시다.”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킨 큰 처남이 이렇게 호기를 부립니다. 온 나라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시국이라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정겹게 들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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