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거무튀튀하던 마을 밭들이 어느 틈에 가르마라도 탄 것처럼 이랑이 줄줄이 가지런합니다. 이랑마다 새로 입힌 까만 멀칭 필름이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산과 들의 봄꽃도 좋지만, 마을 온 밭에서 꿈틀대는 저 이랑과 고랑의 굴곡이 봄을 맞는 농민의 근육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쾌하군요. 감자는 이미 다들 심었고, 대파는 일손을 기다리는 중이겠습니다.
“상추 딸 때 안 되었나?”


트랙터를 몰고 가던 농민께서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고는 껄껄 웃습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감자심기가 며칠 늦어져 “이눔의 비가, 이눔의 비가.” 하시던 분입니다. 아내와 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환하게 화답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수십 가지 이파리 채소를 키우는 우리 부부는 2월 정식에 이어 이제 수확 철을 맞았습니다. 금세 숨이 턱에 차 전전긍긍하겠으나 당장은 밑천이 두둑한 것 같아 기분이 좋군요.


비닐하우스에 물을 대려고 분수 호스를 손보고 있는데 아내가 곁을 지나가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이런저런 농사일을 쳐내는 게 늘 마뜩잖은 아내이긴 하지만, 긴 한숨은 미루어 둔 일 때문에 한 해 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의 표현입니다. 잠시 쉬는 틈에 눈치를 보아가며 물었더니 겨우내 연동하우스를 한 동 더 짓지 못해 5월에 들어갈 모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군요. 올 초부터 날도 따스한 김에 채소 선별할 작업장과 창고를 짓느라고 연동하우스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연동하우스부터 짓는 게 옳았다며 후회합니다. 조목조목 따지자면 연동하우스가 창고와 작업장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아내도 알 것입니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기술이 부족하고, 근력도 미치지 않아 하우스 지을 시간을 벌지 못한 탓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저와 생각이 좀 다르군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관건은 순서라는 게 아내의 진단입니다. 편의시설보다는 생산시설이 먼저라는 것이죠. 일하다가 말고 제법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비닐하우스 한편의 그늘막에 앉아 아내와 티격태격합니다.


아내는 언제나 일을 만드는 데에 집중합니다.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그곳에 이르는 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망라하는 작업뿐 아니라 부수적인 사안들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합니다. 일종의 완벽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와 달라서 늘 형편과 처지에 맞게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영역에 주목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으나 개량주의적 태도인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 농업의 생산성을 향상해 준다는 점에서 연동 하우스 추가가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아내는 판단합니다. 저는 창고와 작업장이 능률향상에 보탬이 되니까 실익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진즉부터 봄 오기 전에 하우스 짓는 건 포기했지?” 결과적으로는 그렇군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뭐 기만이라도 한 것 같네?” “그렇지, 미필적 고의.” “아이고, 사람을 완전 범죄자로 모네.”
아내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새로운 연동하우스가 완성되었더라면, 아내는 열심히 수집해 둔 수십여 종의 토종 씨앗들을 그 안에 뿌려 훌륭한 채종포로 가꾸었을 것입니다. 너무 오래 묵혀 못 쓰게 된 토종 씨앗을 버리는 아내를 볼 때면 저 역시 안타깝고, 착잡합니다.


“그래도 기둥 다 박았고, 활대는 금방 올릴 수 있겠고, 나사 박는 건 내 전문이니까. 금세 만들 수 있을 거야, 하하.” “말로는 대한민국 농사 다 짓지.” 아내는 헛웃음을 짓고 맙니다. “말이야. 내일은 채소 수확해야 하니까 오늘 뒷산에 가자. 생강나무꽃을 좀 따던가, 아니면 참꽃을 따도 좋고. 그러자! 사람이 일을 부리는 거지, 일이 사람을 부려먹게 놔두면 안 되지, 안 그래?” 그러나 뒷산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모종에 들어갈 씨앗들이 잔뜩 밀려 있어 쏘다닐 형편이 아니거든요. 이러다가 매년 만들던 생강나무꽃차를 거르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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