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고 집에서 일만 하란 법이 있나요?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3월8일은 유엔(국제연합)이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임금차별 개선(빵)과 참정권(장미) 확보를 위해 궐기한 날을 기념해 지정됐다.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농촌지도자 중앙연합회 박순옥 여성부회장을 만났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창립 이래 최초의 여성부회장으로 선임됐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농촌지도자회 최초의 여성부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을 선택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지난해 8월 여성부회장으로 선임된 이후 시,도 연합회 농촌지도자대회에 참석해서 인사를 드렸지만 아직까지 전국의 10만 회원들께는 제대로 인사를 못했다. 늦었지만 농업인신문을 통해 회원님들께도 감사 인사드린다.


여성의 힘으로 농촌 사회 변화 이끌어 낼 것


새로 생긴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일반 회원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농촌지도자 중앙연합회가 여성부회장직을 새로 만든 것은 농촌지역에 여성농업인이 절반이 넘어선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농연이나 전농 같은 단체는 여성조직이 별도 단체로 활동하고 있지만, 농촌지도자회의 경우 별도의 여성 조직이 없는 점도 고려했을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건, 현 중앙연합회 임원진이 농촌여성이 처한 문제를 잘 알고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부회장직을 신설했다는 것이다.
여성부회장직을 맡은 지 6개월이 지났는데 눈에 띄는 활동이 부족하다 보니 아직 일반 회원들은 잘 모르고 계신 것 같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아질 것이다.
 


취임 인사에서 여성회원들을 하나로 모아 농촌지도자회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지난해 12월에 처음으로 여성농촌지도자 품목별 조직화 교육을 실시했었다. 40명의 여성지도자가 참석한 교육과정을 함께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여성지도자 네트워크 구성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다. 70년 지도자회 역사에 처음 여성부회장이 선임됐다는건 달리말하면 그동안 우리 지도자회 조직에 여성이 설자리가 없었다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실행할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전국적인 여성지도자 회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전국 여성지도자 네트워크 구축에 전념하겠다.


여성지도자 회원을 많이 만난다고 네트워크가 구성되는건 아니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집에서 일 만하던 농촌 여성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원하는 뭔가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지난해 농촌연구원의 조사 자료를 보면, 여성농업인의 85.9%가 여성농업인을 위한 교육을 원하고 있다. 원하는 교육 내용은 ‘취미·여가·교양’ 교육이 가장 많았고, 부업과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도 많다.
앞으로 중앙연합회와 시,군 지도자 조직의 협조를 받아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많이 실시하려고 한다. 교육에는 여성지도자 회원뿐만 아니라 기존 지도자회 회원들의 아내나 아직 지도자회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 농촌여성들도  가급적 많이 참석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함께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여성 네트워크 구성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군 단위 여성지도자 조직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여성 회원 활성화가 농업·농촌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음과 양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지도자회 조직은 그동안 양의 기운만 넘치는 불균형 상태로 유지돼왔다. 저는 개인적으로 농촌지도자회가 앞으로 백 년, 이백 년 앞을 보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들어와서 변화를 이끌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만의 조직이라는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농촌 여성들은 부녀회나 새마을회, 각종 계모임 말고는 활동할 공간이 없다.
전국적인 조직망과 탄탄한 조직 기반을 갖추고 있는 농촌지도자회가 여성농업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당연히 회원수가 늘어날 것이고, 정부와 자치단체, 농협 등 각종 농관련 기관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게 분명하다. 지도자회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활동들도 과거보다 훨씬 큰 힘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성농업인 사회참여 확대, 농촌 발전 앞당길 것


지난해 12월, 여성농업인의 정책 참여를 확대하는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의 핵심은 그동안 여성농업인 단체 대표만 참가할 수 있었던 각종 정부위원회에 일반 여성농업인도 위원으로 참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농식품부 여성정책팀도 최근 이 법안의 취지를 살려 농식품부와 지자체 정부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법정기준 40% 이상으로 유지토록 하고 농협의 여성조합원과 임원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앞으로 여성지도자회원은 물론 일반 여성농업인들도 각종 정책테이블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만큼 많은 여성들이 참가할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숨겨져 있던 보석을 많이 찾아내서 여성농업인들의 권익이 신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개인 이력을 보면,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경력이 많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여성 최초’로 직책을 맡은 것이 몇 개 있다. 2006년에 강원도 최초의 여성 이장으로 선출돼 6년간 활동했고, 2018년에는 최초로 여성 할당이 아닌 남성 후보와 경쟁을 통해 홍천농협 이사로 선출됐다. 마을일을 볼 때도 그렇고, 농협이사로 선출된 것도 그렇고 여성최초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남들보다 더 잘할려고 많이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말못한 고충도 많았지만 여성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처음으로 개척해 나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게이트볼 활동, 여성으로 당당하게 일하게 한 원동력


홍천군 게이트볼 협회 사무장을 맡은 것도 여성으로는 처음이라던데.


1996년 마흔여섯의 젊은 나이에 우연히 시작한 게이트볼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게이트볼을 하시는 노인분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게이트볼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홍천군 게이트볼 협회 사무장을 맡으면서 내 인생이 크게 변했다.


여성의 장점을 살려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면서 절약한 돈을 모아 2년에 한 번씩 8백 벌의 운동복을 장만해 회원들에게 나눠줬었는데, 이 경험이 컸다. 회원들로부터 “역시 여성이 사무장을 맡더니 협회가 달라졌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큰 보람을 느꼈고, 이후 게이트볼 경기 심판과 강원도 게이트볼 협회 임원 등을 연이어 맡아 활동하면서 남성 중심의 조직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여성도 당당하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장과 농협 이사, 농촌지도자회 활동까지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은 게이트볼 협회 활동에서 대부분 만들어졌다.

 

20년 넘게 ‘순옥한과’라는 브랜드로 전통한과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한과는 시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아 3대째 이어오고 있는 가업이다. 2013년 농업기술센터로부터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후 현재는 동홍천휴게소 로컬푸드 매장 등 홍천군 관내 6개 매장에 전통한과를 납품하고 있다. 농사일을 하면서 전통한과점을 운영한다는게 쉽지 않지만, 전통한과를 계승한다는 보람도 있고, 솔직히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
최근 농촌여성들이 부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전통한과점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도 앞으로 여성 교육 때 적극적으로 나눌 예정이다.

 

 


농촌여성 권익 향상, 남성들의 변화와 도움 필요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농촌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남성들의 의식변화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농촌지도자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위기에 처한 농촌과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도 농업인구의 절반이 넘는 여성농업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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