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단순하게 이기고 지는 것만을 놓고 따져보면, 저는 이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별로 용감하지 못해서 맞서서 경쟁하기보다는 저 자신을 추스르면서 세상을 엿보는 데에 익숙합니다.


아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와 색깔이 같은 것 같아서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악착같이 대들고, 득달같이 덤비는 성격이었으면 저도 맞장구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내 그 생각은 접었습니다. 아내에게 기대 제 습성을 바꾸는 게 터무니없어 보였고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두 사람이 함께 만들게 될 생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고, 삶의 새 국면이 필연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대신 생겼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이고 자족적이어서 좋았어.”
결혼 후에 아내가 한 말입니다. 오랜 객지 생활로 늘 빠듯하고 팍팍하게 살아온 아내는 제게서 그런 모습을 본 것이죠. 아내의 성향 역시 저와 비슷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치열한 열정이 숨어있어 조금 달랐습니다.


“근데 당신은 좀 게을러.”
아내의 최종평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부부 사이에서만 견준다면 옳은 말이기에 저는 둘 중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이 좀 다르기는 해도 수세적인 경향이 몸에 밴 우리 부부는 농사를 지으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과하게 표현하면 우리 부부는 식물을 닮았습니다. 식물들은 최소한의 영역 안에서 다툼 없는 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탐닉하면서도 상대를 공격하는 탐욕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제 단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대개의 생명체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세상과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은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것만큼이나 다르니까 말입니다. 이웃한 것들을 훼손하면서 자신의 번성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 이기지 못할지언정 지지 않는 법을 아는 그들의 속성은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대목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느지막이 시작한 농사라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기후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기온과 강수량이 철에 따라 터무니없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는 이미 들어선 봄 문턱에서 폭설이 내린 적이 있습니다. 잘 자고 일어났더니 밤사이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였는데 계속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농막에 이웃한 비닐하우스 창고를 덮은 눈이 곧 무너질 기세였습니다. 부리나케 쓸어내리고는 아래 밭 연동 하우스로 갔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멀쩡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들어갔더니 물받이를 받친 중간 기둥 서너 개가 무르팍 아래로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녹기 시작하여 기울어진 물받이를 통해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갓 심은 채소들이 곧 물에 잠길 태세였습니다. 당장은 멀쩡하였으나 언제 서까래(활대)가 비틀어져 비닐마저 찢어질지도 몰랐습니다. 눈은 이른바 ‘습설’로 여전히 펑펑 내리고 있었고요.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아내와 저는 깨달았습니다.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자동차용 잭(쟈키)을 서둘러 가져와 파이프를 올려 서까래 기둥을 받쳐서 들어 올렸습니다. 다행히 바라는 대로 되어서 임시변통으로 비닐하우스 붕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많은 채소가 쓸모없어졌고, 농막 옆 창고는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후 며칠간 마을에서 나오지 못한 것은 덤이었고요. 지나고 나니 조금만 더 영리했더라면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겠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19 탓에 온 나라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부수적인 사안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히 대구, 경북 지역의 시민 모두가 감염병이 사윌 때까지 무탈하시길 바라며, 아프시더라도 이내 나으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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