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시집처럼 예쁘고 두께도 적당한 데다 제목마저 ‘파란 하늘 빨간 지구’라니, 깊이 숨어 있던 감수성까지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위험을 알리는 빨간 불이 코앞에서 번쩍번쩍하는 기분이 들었다. 천운으로 좋은 기후라는 은인을 만나 번성한 인류가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서 자기 신세까지 말아먹고 있다는,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인도는 지구온난화로 58년 만에 처음 10월 우기를 맞이했으며, 중국 남부와 동부 지역에는 5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져 7만 명 이상이 대피했다. 100년 전 연평균 98일의 여름을 보내던 우리나라는 이제 117일의 여름을 지내야 짧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계속되면서 지구촌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나 기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농업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중이다. 먹여 살릴 식구는 늘어 곧 90억에 달한다는데, 기후라는 녀석이 자꾸 차려놓은 밥상을 엎어버리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엔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후변화로 인한 분쟁으로 51개국 1억 2,400만 명이 기아에 처하게 됐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23개국이 식량난을 겪고, 가뭄으로 3,900만 명 이상이 긴급구호를 받았다. 기후변화는 식량의 생산과 공급에 영향을 끼쳐 많은 사람을 굶게 만든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농장맞춤형 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를 개발해 현재 시범 제공 중이며, 2027년까지 전국 155개 시군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농장 단위로 상세 기상과 재해 예측정보를 제공하고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재배 중인 작물 품종과 생육 단계에 맞춰 위험 단계별 대응지침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2020년부터 2027년까지 ‘新농업기후변화 대응체계 구축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사업을 통해 우리 농업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기후에 맞는 작물 재배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한다. 또한 온실가스 계측과 감축 기술 개발 등으로 농축산 부문 온실가스 줄이기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거칠 것 없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춰보고자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정을 체결한 것이 2015년의 일이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 아래로, 더 나아가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195개 나라가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일교차가 10℃ 이상인 환절기에도 별 탈이 없었는데, 2℃가 대수인가 싶겠지만 인류는 이보다 평균온도가 2℃ 높은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지금보다 2℃ 높은 지구는 금성이나 화성처럼 다른 세상일 뿐이다.


10부터 1까지 거꾸로 세어 내려가는 연말 카운트다운은 언제나 묘한 흥분과 설렘을 자아낸다. 가는 해에 대한 시원섭섭함과 오는 해에 대한 기대가 숫자 하나마다 새겨진다. 하지만 18세기 말 산업화와 함께 시작한 기후변화 카운트다운은 숫자가 줄어들수록 두려움, 걱정이 앞선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도 0에 가깝기 때문이다. 농업은 물론 모든 분야가 0을 외치는 순간을 늦추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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