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식물은 겨울잠을 잡니다. 뿌리까지 얼어 죽은 한해살이는 단단한 씨앗으로 잠들어 있고, 땅속에 단단히 뿌리를 뻗은 여러해살이는 밑동에 하얀 움을 꼭 보듬은 채로 겨울을 납니다. 온갖 나무들이야 이파리를 버리고 곡기를 끊음으로써 차디찬 겨울에 가사상태로 맞섭니다.


동물은 일부만 겨울잠에 듭니다. 잠들지 않는 동물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며 추위를 견디느라 가을까지 기껏 찌운 살을 모두 축내 비쩍 마르기 일쑤입니다. 겨울은 살아있는 것들에게 고난의 계절이자 어떻게든 살아남는 각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20년 2월 11일입니다. 낮에는 밭에서 일했습니다. 봄이나 다름없는 따스한 날이어서 두툼한 겨울 외투가 번거롭고 무겁다고 느껴집니다. 이마에 땀이 나고 속살 이곳저곳이 근질거리기도 합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갈색이고, 상록수인 소나무 잎조차도 여전히 탁한 녹색인 늦겨울 풍경이 왠지 낡고 추레해 보입니다. 그 순간 저의 이런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다락밭 사이 개골창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2020년 2월 11일, 오후 1시 16분이었습니다. 수컷 개구리의 꾹 참았던 간절함이 애타는 교성으로 덤바우에 울려 퍼진 것입니다.


“에구머니나, 경칩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쟤들 다 얼어 죽겠네.”
 아내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기하고 반가워서 둘레둘레 개골창을 연신 기웃거립니다.


“하여간 수컷들은 성미가 급해요.”
“사람은 여자들이 좀 급한 편인데, 그지?”
“어머, 동물 얘기하는데 왜 여자가 나와? 그나저나 쟤들 짝짓기하면 알이 다 얼어 죽게 생겼네.”


 짝짓기하더라도 암컷 개구리는 날씨 보아가며 한 달 정도는 품고 견딘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했다가는 아내가 현명하고, 진득한 암컷 어쩌고 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참았습니다.
올해는 이미 1월 초에 개구리 짝짓기가 서울 남산에서 목격되었다고 하니 기후변화가 새삼 실감 납니다.


“그런데 말이야. 겨우내 일할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던 딱새가 안 보이네?”
“걔들도 짝 찾아 나섰나 보다.”
“그럴까?” 밭 끄트머리와 산비탈 사이를 흐르는 개울에 살얼음 하나 끼지 않았군요. 유난히 맑은 물이 졸졸 돌 틈을 굽이굽이 흘러갑니다. “애걔, 고작 이만치 쌓았어?”
개울가에 울창했던 억새를 베어 무더기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며 아내가 또 타박을 시작합니다.


“아니, 부스러기가 온몸에 들어가 따끔거리는 판에 수고했다는 말은 못 할망정.”
“그건 목욕을 안 해서 그렇지!”
도무지 말로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해가 짧은 철이니 아내와 저는 서둘러 밭 가의 잡목을 베어나갑니다. 말이 잡목이지 신나무, 오리나무 같은 것들이어서 아깝습니다. 신나무와 오리나무는 짙은 검은색을 내는 염색재료로 잘 알려진 나무들입니다.


약용으로도 사용하는 것들이니 매번 자르는 게 내키지 않습니다. 더구나 개울 쪽으로 난 경사가 급해 자꾸 나무를 베어내면 밭 턱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놓아두면 봄볕을 가려 그림자를 밭에 드리우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나뭇가지를 개울 복판에 던져놓으면 어떡해?”


큰비에 물이 불어나면 나뭇가지가 둑 역할을 해 물길이 밭으로 날 수도 있다는 아내의 염려입니다. 설마 하는 마음이지만, 혹여나 그리되면 큰일이라 끙끙대며 나뭇가지들을 물가에 가지런히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산초 나뭇가지의 가시에 살짝 찔리기도 합니다. 따끔 아픈 사이 베어낸 자리에서 알싸한 향이 피어납니다. 산초나무 역시 귀한 나무인데 이렇게 베어 눕히고 말았군요.
 개울 안에서 나뭇가지와 씨름하며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위틈에서 뒤뚱거리는데 갑자기 아내가 까르르 웃습니다. 허청대는 제 품새를 놀리는 아내의 웃음이겠거니 했는데, 아내가 야구선수가 슬라이딩하듯 배를 깔고 일자로 누워 키득대는 것입니다. 미끄러워 엎어진 모양입니다.
“완전히 개구리네, 개구리.”


“엎어진 김에 쉬어야겠다. 근데 어디 다쳤나 묻지도 않고, 부축도 안 해주나?”
“해 떨어지네. 가는 길에 업어줄게, 됐냐? 울어라, 개구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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