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 정서 모르는 공직자 보면 ‘답답’…농민 스스로 힘 키워야 할 때”

 

지난해 10월부터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의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노만호 정책부회장의 시계는 숨돌릴 틈없이 빠르게 돌고 있다.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의사를 발표한 이후부터 주요 농정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대표 자격으로 다른 농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정책 협의를 진행하는 등 업무가 굉장히 많아졌다. 지난해 있었던 ‘WTO개도국 지위 포기 규탄 기자회견’, ‘WTO 개도국지위 포기 규탄 전국 농민대회’ 개최 준비를 위해 농촌지도자회 대표로 활동했고,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개도국 지위 포기 피해 관련 업무협의회’에 참석해 농업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연말 무렵부터는 농식품부 차관이 주재하는 ‘공익형직불제 협의회’에 농민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4.15 총선을 앞두고 농민단체 합동 공약요구안 마련 작업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5일 수원에 있는 중앙회 사무실로 출근한 노만호 정책부회장을 만났다.

 

“나도 농사꾼…회의 힘들지만 농민 대변하는 보람으로 버텨”


▲오늘은 회의도 없는데 무슨 일로 사무실에 들렀나요?
어제 오전에 있었던 중앙회 임원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서‘한국농축산연합회 대표자 회의’에 참석해 올해 사업계획에 대한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 후에는 또 자리를 옮겨 ‘농민단체장과 정의당 심상정 대표 간담회’에 참석했고 간담회가 끝나자 마자 농식품부 이재욱차관이 주재하는 농민단체장 간담회까지 마치고 나니 한밤중이더라구요. 평소 같으면 집에 갔다왔을텐데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 오후에 또 한국농업인단체연합 대표자 회의에 참석 해야 해서 서울서 자고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려면 미리 자료도 검토해야 하니까요.

 

▲매번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3천평 배농사를 짓는 사람입니다. 농사가 원래 때를 잘 맞추는게 가장 중요한거 아닙니까? 정책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각종 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솔직히 농사일에 차질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책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농촌지도자회 대표로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이상 연합회의 이름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힘이 들지만, 덕분에 농정현안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고,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장 목소리 전할 때 자신감 있게 말하려 노력”


▲과거와 달리 정책위원회의 활동 영역이나 위상이 많이 발전했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정책부회장으로써 특별히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게 있나요?
제가 오랫동안 농촌지도자 활동을 하면서 제일 안타까웠던 게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치인들이나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농민들 숫자가 많았기 때문인지 위정자들이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날이 갈수록 농업과 농촌, 농민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는게 더 심해졌습니다.
우리 농촌지도자회도 마찬가지여서, 일선 시군 단위 회원들이 갖가지 고통과 불만을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정작 중앙회 차원의 대정부, 대국회 관련 활동은 날이 갈수록 위축돼 온 게 현실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은 우리 10만 지도자 회원의 평균 정도의 능력만 갖추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회원과 시도 임원, 중앙회와 정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의 중요성을 좀 더 자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책부회장으로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남의 말도 잘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농민들의 입장을 전달할 때는 분명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중요한 농정 현안은 공익형직불제를 어떻게 시행하느냐 입니다.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공익형직불제 시행 방안은 농식품부의 담당자와 농민단체 정책담당자들, 그리고 학계와 시민단체 대표자로 구성된 실무추진단 차원에서 초안을 만드는 작업을 해서 기본안이 완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공익형직불제 협의회’에서 실무추진단이 작성한 초안을 최종 점검한 이후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의당 농민 비례대표 앞순위 배정 약속 받아내”

 

▲4.15 총선에서 각 정당이 농민 비례대표를 배정하느냐도 큰 관심사입니다.
비례대표 문제에 있어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농민후보를 당선권인 앞번호로 배정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아직 각 당의 공천이 완료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로 다른 농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농민대표가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정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겁니다.

 

▲정책부회장으로서 많은 대외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언론보도나 발표를 통해 공개되는 회의 결과 보다는 회의 진행 중에 발생하는 일들이 더 궁금한데요,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이 있나요?
일단 농식품부나 농진청 공무원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농업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이 이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땅과 생명을 가꾸는 농민의 정서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한복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농촌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부모 세대 역시 대부분 농촌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농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지방 중소도시 출신이라도 농촌을 이해하고 농민의 정서를 아는 공직자들이 많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농업공무원 ‘농촌연수’ 도입해 농민과 공감토록 유도해야”


▲부모가 농사를 짓고 있어도 그런 정서를 알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농식품부 공무원들만이라도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농촌체험이나 농가연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농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농민단체 대표들도 자기가 속한 단체의 입장만 강조하는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들 들어 한우가 좋다고 해서 너도나도 한우사육에 매달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동안 수없이 경험했지 않습니까. 일정 정도 자기 단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좀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농업을 하나로 보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농촌지도자회도 개선할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각종 회의에 참석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중앙단위의 각종 회의 결과나 사업 추진 상황이 일반 회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익형직불제 시행과 관련해서 정말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적절한 대안을 찾는 회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 농민들은 간략하게 정리된 발표문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앞으로는 중앙단위에서 참가한 각종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고, 어떠한 주장이 반영되었다면 무슨 이유로 반영되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정책부회장인 제가 먼저 나섰어야 하는 일인데,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당장 만족할 만한 수준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반 회원과 좀 더 소통하는 연합회 돼야”

 

▲농촌지도자 회원들께 당부말씀 있으시면 한마디 해주시죠.
농업·농촌·농민이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받고 국가 주요 정책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농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누가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기에 앞서 스스로 일어서서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를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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