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는 격이 없고, 벽도 없어 마음과 마음이 유리창처럼 훤히 드러나 보인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수도 없이 말다툼을 벌이면서도 이런 오해가 끈질기게 마음 한구석에 찌든 때처럼 달라붙어 있습니다.
‘내 맘 알지?’투의 막무가내 신뢰가 사실은 불화의 불씨가 되는 데도 내 맘과 네 맘을 동일시하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도 오래 함께 살아오면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는‘손발이 안 맞는다.’라는 말을 제게 자주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손발은 맞추는 거라고 대꾸합니다. 아내는 차이점에, 저는 공통점에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마저 저처럼 부부는 같아야 한다는 고집을 부린다면 생활이 얼마나 강퍅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습군요.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동시에 서로 다름에 안심하니 말입니다.


“그거 나중에 하고 이거 좀 해봐.” 잡목 베는 건 나중에 하고 먼저 거름 쌓을 터부터 다지라는 말입니다. 개울과 우리 밭 사이에 무성한 억새밭 정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고라니 등쌀에 농작물 피해가 워낙 심해 새로 방지망을 치려고 시작한 일입니다. 우리 부부의 일이라는 게 시작할 때 작정했던 것과 달리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입니다만, 아내는 단연 체계적인 방식으로 샛길로 빠집니다.

생각보다 무성한 억새를 모아 거름을 만드는 데에 욕심이 생겨 고라니 망은 뒷전이 된 것이죠. 사실, 억새만큼 훌륭한 유기물은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부러 구하기는 어려운 판에 지척에서 거저 얻으니 오늘의 계획이 확 바뀐들 탓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름 터까지 미리 잡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턱은 철망으로 해야겠다. 봉도 몇 개 박아야겠네.”

아내는 고라니는 까맣게 잊었는지 한껏 품을 넓히며 억새를 추스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지금 안 하면 틈이 안 날 텐데?”“어차피 땅 얼어서 말뚝도 못 박잖아.”

이렇게 한마디씩 하고는 마주 보며 무슨 오리 떼처럼 갈갈 웃었습니다.

‘지금 안 하면’은 아내가,‘어차피’는 제가 자주 쓰는 습관적인 말인데 주인이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말 씀씀이가 역전되기도 하는군요.


 예년에 견줘 유난히 따스한 1월이라지만, 오후부터는 바람이 차고 기온도 뚝 떨어집니다. 마다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 농막으로 이끄는데 맨손입니다.

장갑도 안 끼고 일하느냐는 핀잔을 주는데 아내의 손에 돌이라도 박힌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제 손바닥에 겹쳐 놓고 보니 돌이 아니라 굳은살이군요.

손바닥이 죄다 꺼칠한 게 미구에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질 것처럼 보입니다.“그러게, 장갑을 안 끼니까 그렇지.”되받아치기에 도가 튼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사방팔방에 장갑 늘어놓고는 만날 새 장갑 끼고 다니는 사람은 손이 고와 좋겠다는군요.

제 손 또한 곱지 않을뿐더러 온 밭에 장갑 널어놓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라 저도 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밭 갈다 보면 흙투성이 외짝 장갑이 거짓말 보태 한 타래는 나오거든요.


티격태격하며 농막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닥불이라도 피워놓고 쉬었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농막에 이웃한 자두나무 가지치기를 합니다.

문득 한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우리 덤바우는 아내의 맨손, 거기 박힌 굳은살로써 지켜지나 봅니다.

아내가 잘라낸 가지들을 잘게 잘라 나무 발치에 뿌려주다가 제법 굵은 가지는 톱을 넣어 자르려고 하는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바보야. 옹이 있는 데가 잘 썰리겠어요?”

그렇습니다. 옹이는 나무의 갈라짐을 늦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그런 게 제 역할일 텐데 갈 길이 멉니다.

삭정이를 주워다가 불을 지피면서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마음의 유리창 어쩌고 할 게 아니라 유리창이 없이도 훤히 보이는 아내의 몸이나 잘 살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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