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잔뜩 골이 나서 투덜투덜합니다. 농막 앞마당의 틀밭에 두둑이 심어두었던 방풍나물에 사달이 난 것입니다. 추위에 누렇게 바래기는 했으나 이파리가 넓적하고 줄기도 투실투실 한 게 멀쩡해 보이는데 그럽니다.


아내가 이거 보라며 한 포기를 휙 들어 올리자 줄기째로 훌렁 빠집니다. 웬일인가 싶어 이것저것 뒤적거렸더니 대부분 줄기가 잘려나가 있는 것입니다. 줄기가 있던 자리를 후벼 파니까 있어야 할 뿌리가 없군요.
“두더지가 먹었지, 뭐.”
 아내가 고자질하듯 성마른 소리를 냅니다.


“두더지는 식성이 동물성이야. 딴 놈이 먹었네요.”누가 먹었든 나물 밭떼기 하나가 하루아침에 다 날아간 것 아니냐, 지금 범인 물색이나 할 때냐고 버럭 아내의 화살이 저를 향합니다. 그러는 아내의 앵돌아진 말본새를 보다가 저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몇 해 전에 참깨를 심던 아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이 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쪼이던 여름날이었는데요.
먼 밭에서 밭 갈던 제게 달려와 다짜고짜 참깨 다 물고 간다며 참깨밭으로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두 부부가 참깨 심은 자리에 엉덩이를 번쩍 든 채 엎드려 이랑을 눈으로 더듬거렸습니다. 아내 말대로 참깨 도둑이 있더군요. 새까만 개미가 하얀 참깨를 물고 열심히 제 둥지를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머, 어머, 개미가 참깨도 먹는구나.” 아내가 새삼스럽게 범인을 지목하자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개미 알하고 똑같이 생겼잖아. 땡볕에 죽을까 싶어 제 자리로 옮겨가는 거지.”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한참 바라보다가 쏘아붙였습니다. “개미가 바보냐?”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힌 아내의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보며 그때도 웃었더랍니다. 그 후로 아내는 개미를 볼 때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우범자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진딧물도 옮기잖아. 생긴 건 예쁜데 왜 그러는지 몰라.”
“그저 타고난 대로 사는 건데 너무 미워하지 마.”
“부처님 나셨어요, 아주.”


 그저나 난감한 일입니다. 모르긴 해도 방풍나물 뿌리는 들쥐가 먹어치웠을 것입니다. 겨우내 캐지 않고 내버려 둔 돼지감자 역시 매년 쥐가 입을 대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온 밭에 쥐약을 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나 싶습니다. 돼지감자와 달리 방풍은 이른 봄 내내 수확해야 하는 작물이어서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하는데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농민은 작물 피해가 하도 심해서 혹시나 하고 쥐덫을 놓았더니 하룻밤 사이에 서른 마리도 넘게 잡았다고 하는군요.


아내나 저나 쥐의 사체를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덫은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이런저런 천연 기피제를 떠올려 보았으나 다른 예를 보았을 때 효과는 낮을 것이 빤했습니다.


 작업장을 짓다가 짬짬이 쉴 때면 아내는 제게 대책을 독촉합니다.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없어 봄이면 다른 먹잇감이 많을 테니 작물 피해는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달랬더니 저를 다잡고 을렀습니다. 고라니를 제대로 막지 못해 상추도 모자라 고추 다 먹히고, 콩은 아예 심을 엄두도 못 내는데 방책을 내놓은 것이 있느냐는 것이죠. 겨우내 있는 자재로 망을 밭 가에 두르자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여태 시작도 못 한 것을 꼬집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연중 벌여야 하는 병충해 방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제 불성실을 질타하기에 이릅니다.


아내의 지적대로 계획을 짜고, 일을 벌이고, 실행하는 것에는 밝지만 일상적인 관리와 세심한 예찰에는 제가 소홀한 편입니다. 어지간히 바지런을 떨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아내의 계속되는 질책을 듣기 싫어서 한마디 했습니다.


올해가 쥐띠해 아니냐, 한밤중에 활발한 이 동물이 상징하는 게 부지런한 잉태다. 그저 유해동물로만 보지 말자. “그리고 나도 쥐띠다.”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격인 제 말에 아내가 고이 넘어갈 리 없습니다. “그런 쥐 좀 닮아보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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