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시행된 닭고기, 오리, 계란 이력제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를 만들어놓고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거세다. 적어도 유예 기간을 두고 드러난 문제점을 재검토 해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계란 유통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난 2018년 11월 계란 이력제 시범사업부터 줄곧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그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제도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축산물품질평가원은 현장의 의견들을 계속 수렴하고 부분육과 계란 등 일부품목에 대해 6개월의 계도기간 운영을 검토 중이다. 가금 이력제가 무리없이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보겠다는 것이다.
 
 

 

■ 가금이력제는?


정부는 기존 소와 돼지에 적용해온 축산물 이력제를 지난 1일부터 닭·오리·계란(가금산물)까지 확대했다. 축산물 이력제는 가축·축산물의 이력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가축 방역과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지난 2018년 11월부터 시행 전까지 총 3차에 걸친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생산에서 유통·판매 단계까지 이력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왔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닭·오리·계란도 사육·도축·포장·판매 등 단계별로 이력을 공개해야 한다.

사육 단계에선 농장 등록, 가축 이동 신고, 사육 현황 신고 등이 의무화된다. 닭·오리 농장주는 매달 말 사육 현황을 축산물품질평가원 또는 축산물이력제 모바일 앱을 통해 신고해야 한다.
농장 등록을 하지 않은 경영자는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농장식별번호를 신청해야 한다. 도축 단계에선 이력번호를 신청·표시하고 도축 처리 결과와 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계란은 이력관리시스템을 통해 이력번호를 발급받아 포장지에 표시하고 판매점 등과 거래한 내역을 신고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는 축산물 이력제가 확대 시행되면 위생 문제 등이 발견됐을 시 신속하게 이동 경로를 추적해 회수 및 유통 차단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닭고기산업, 이력제 시행 늦춰야
닭고기산업은 이력제 시행이 달갑지 않다. 가뜩이나 장기간 불황으로 닭고기 산업의 ‘곡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이력제 시행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산업 위축이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닭고기 시장은 공급과잉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냉동 닭고기 수입은 지속 증가하고 있어 시름이 깊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운영하는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균 생계(중, 1.4㎏ 이상~1.6㎏ 미만) 생계 유통가격은 ㎏당 1,000원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닭고기산업 전반에 걸쳐 소·돼지와 가금류의 유통 환경이 명확하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계도기간 부여를 넘어, 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소·돼지 두수에 비해 닭 등의 개체수가 현저하게 많기 때문에 관리에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업계는 생산단계에서 개체포장 제품의 경우 48시간 이내 원료를 묶을 수 있어야 하고, 동일한 날에 출하된 닭에 대해 동일 이력번호를 부여해야 하며 이력번호 생성 및 마감 후에도 수정이 가능토록 전산 수정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유통단계에서도 가공 실적까지는 자체 ERP 시스템 구축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나 이력번호 표시별 출고는 상하차 관리 및 위탁 배송 교육 등에 따른 상하차 지연이 우려되고 추가인력 소요 등 비용이 부담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개선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특히 현행 상차시 대당 1시간 30분이 소요되나, 거래명세표를 확인해 거래처별 이력번호 매칭 후 상차시 2시간 5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거래처마다 품목별로 각각의 코드를 부여받아야 하는데 이때 혹시라도 바뀌면 곧장 범법자가 될 수 있게 된다"면서 "꼼꼼한 관리를 위해 이력제를 관리하는 직원을 두는 것도 부담이 큰데 현장의 목소리 없이 성급하게 제도가 시행되는 것 같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계란, 이력제는 ‘옥상옥’ 제도

계란은 이미 산란일자 표시가 의무화돼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력제까지 적용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사실상 ‘이중규제’, ‘옥상옥’ 제도라는 지적이다. 설령 이력제의 본래 제도 취지는 좋을 수 있다고 공감할 수 있지만 이미 시행 중인 제도와 중복되는 부분이 상당하고 현장 적용시 문제점만 많아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거세다.


실제로 지난 2018년 11월 계란 이력제 시범사업이 전개될 당시 계란 유통인들은 이력제가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제도 정착이 힘들다는 점을 줄곧 제기했다.


그러나 계란 유통인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고 원안대로 이력제가 실시됐다. 이 때문에 계란 유통인들은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생성해야 할 이력번호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현재 유통인들의 농장 방문주기는 3일 간격으로, 만약 10개의 농장과 거래를 하고 있다면 3일 간격으로 집란을 통해 생성해야 할 이력번호는 30개로 늘게 된다. 여기다 거래처별로 분리를 한다면 최소 100여개의 이력번호가 추가적으로 생성되게 된다. 사실상 이력번호만 챙기다가 계란 유통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계란유통협회 관계자는 “현재 난각에 표시되는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이력관리가 가능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제도를 이중으로 만들어 산업을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면서 “간소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어느 누구도 환영받지 못하는 길을 굳이 가려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 미니 인터뷰 (사)한국계란유통협회 김낙철 회장
 
현실과 동떨어진 계란 이력제 개선돼야
 

 

지난 1일부터 계란이력제가 시행되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한국계란유통협회이다. 현실적으로 시행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강제적으로 추진을 강요하는 정부의 행태에 맞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한국계란유통협회 김낙철 회장은 최근 서울시 모처에서 계란 이력제 시행 문제점을 꼬집는 간담회를 가졌다. 김 회장은 계란 이력제의 본래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으나 실행단계에서 계란유통인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고 수차례 의견을 표출했다.

김 회장은 “계란 이력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통인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행된 것”이라며 “시범사업을 통해서도 개선의 목소리를 숱하게 제기했지만 그 어떤 것도 개선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또 “계란은 산란과 동시에 섭취가 가능한 완전식품이기 때문에 이력번호의 발급‧표시‧신고가 식용란선별포장업이 아닌 생산농장이어야 하는 것이 옳다”면서 “살충제 파동, 항생제 오남용 등 계란의 논란은 실질적 책임자는 농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계란 유통인에게 전가 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유통단계에서 이미 지나치게 많은 제도들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별, 산란일자별, 거래처별로 발급되는 이력번호를 라벨지에 표시하고 거래처별로 기록.관리하는 것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이라며 “그 누구도 환영받지 못하는 정책을 강제하기 보다는 원점에서 재검토해 제도가 현장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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