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농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10월 이후에는 다행히도 더 이상 발생되었다는 보고가 없다. ASF는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 일단 감염되면 매우 높은 치사율을 보인다. 이에 ASF는 국내 가축전염병 예방법 상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어 관리된다. 또한 ASF가 테러 등의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국가 안보 및 국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생물무기균으로도 지정되어 관리된다.


생물무기균(또는 생물작용제)은 자연적으로 존재하거나 유전자를 변형하여 만들어져 인간이나 동식물에 사망, 고사, 질병, 일시적 무능화나 영구적 상해를 일으키는 미생물 또는 바이러스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물질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탄저병균과 같은 인체인수병원균 27종,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동물병원균 14종, 감자구균과 같은 식물병원균 13종을 생물작용제로 지정하여 제조와 수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놀랍게도 생물무기균 중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벼에 흔히 발생하는 도열병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기존의 화학무기법에 생물무기를 추가하여 생화학무기법으로 개정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인체인수병원균 99종 중 41종을, 식물병원균 18종 중 13종을 각각 생물무기균으로 지정하였다. 이 중 인체인수병원균으로 지정된 41종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으나 생물무기균으로 지정된 13종에 대하여는 논란이 많은데 그 대표가 도열병균이다.


호주그룹 목록 작성을 주도한 서방 국가에서는 주로 수출을 목적으로 벼를 일부 지역에서 격리재배 한다. 이 과정에서 도열병균이 반입되면 큰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수출입 과정에서 도열병균을 엄격히 통제할 필요가 있어 도열병균을 목록에 지정하였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벼를 재배하였고 도열병균은 벼와 함께 진화해 왔으며 벼도 도열병균에 대하여 일정 부분 저항성을 가진다. 따라서 도열병균이 상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서방 국가와 같은 기준으로 도열병균을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미국은 테러분자에 의한 농업생산 피해 가능성에 대한 대책으로 미농무성 동물식물검역소가 ‘테러분자에 의하여 국가 수준의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식물병원균 생물무기균 목록’을 지정하여 엄격히 관리한다. 이 목록의 기준이 미국식물병리학회가 작성한 ‘미국에서 보고되지 않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식물병원균 목록’이었다. 즉 생물무기균 지정시 자국에 해당병원균이 없거나 제한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에 목록에 선정된 것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식물병원균을 연구하였고 또한 국외의 많은 과학자들과 도열병균 연구결과를 공유해왔다. 하지만 도열병균을 생물무기균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나라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호주, 미국 등의 서방이 도열병균의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는 있지만 식물방역법 상의 규제일 뿐,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생물무기균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웃 일본과 중국은 도열병균이 자국 내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자국내에 발생하는 도열병균의 조제와 이동에 대한 규제는 없고, 수출과 수입을 각각 대외무역법과 식물방역법으로 통제하는 정도이다. 결국 호주그룹의 식물병원균 목록은 수출통제용 목록이며,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같이 대외무역법으로 도열병균의 수출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생물무기금지협약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대외무역법으로 도열병균의 수출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므로 굳이 생물무기균으로 지정하여 수출입은 물론이고 국내에서의 조제와 이동까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 생각한다. 이로 인하여 도열병 방제를 위한 연구가 위축되고 선의의 법률 위반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식물병리학계, 식물방역당국 그리고 생물무기균을 관리하는 산업통산자원부가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식물병원균 생물작용제 목록을 다시 만들어야 할 때이다.


도열병균과 같이 현재 국내에 넓게 분포하여 더 이상 생물무기균으로서의 잠재성이 거의 없는 미생물은 지정 리스트에서 시급히 제외하고 반대로 우리의 식량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병원균은 신중히 평가하여 필요시에 추가되어야 한다. 식물병 및 식량안전 관리 측면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생물무기균 목록이 만들어지고 과학적으로 관리되어야만 진정한 식량안보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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