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밭은 워낙 비탈에 지은 밭이라 밭과 밭 사이의 턱이 높은 편입니다. 대개 두두룩한 경사지를 이루고 있어 풀과 잡목이 많습니다. 모두가 다락밭인 덤바우는 그런 턱이 여럿이고 늘 무성합니다. 멀리서 보면 밭 대신 풀과 잡목만 보여 푸서리나 다름없습니다.

틈틈이 낫과 삽을 들고 베고 뽑지 않으면 금세 밭으로 기어오르거나 훌쩍 자라 밭작물이 받아야 할 햇볕을 가리기 일쑤입니다. 그런 둔덕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것 중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산딸기나무입니다. 뿌리가 왕성하여 비탈을 훌쩍 넘어 밭가에서 삐죽삐죽 붉은 줄기를 곧추세웁니다. 가시가 날카로워 맨손으로 제압하기도 어렵고, 제법 자란 것들의 줄기에 옷은 물론 손등이나 팔에 생채기가 나기 쉽습니다. 다행히 뿌리가 깊지 않은 것들은 힘들이지 않고 뽑아 낼 수 있습니다. 매년 걸러낸 덕에 칡뿌리처럼 앙팡진 뿌리를 내뻗은 것들은 드뭅니다.

 

 아내는 그 생김새가 날렵한 낫을 맵시 있게 잘 쓰는 편입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완력이 센 편이니 딸기나무 뽑는 일은 제가 맡고, 아내는 풀을 베거나 넝쿨을 걷는 일을 주로 합니다. 이미 명을 다했으나 환삼덩굴은 누렇게 시들었음에도 그 줄기가 매서워 조심해야 합니다. 스치기만 해도 팔뚝에 굵게 붉은 줄이 가고 쓰라림이 오래 갑니다. 아내는 낫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덩굴을 둥글게 뭉칩니다. 커다란 실타래마냥 적당히 뭉쳐지면 낫으로 삐친 것들을 자른 다음 밭으로 올려둡니다. 이런 식으로 뭉치가 여러 개 쌓이면 제가 옮겨다가 풀퇴비에 올려 이리저리 펴놓게 됩니다.

 

 “딸기 대궁은 한 줄로 놓으라니깐.”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딸기 뿌리와 줄곧 줄다리기를 한 탓에 허리가 뻐근한 저는 대충 그러모아 툭 던집니다. “아니, 거기는 머위 심어 놓은 데잖아.” “온 밭에 머위천진데 또 심어놨어?” 무성할 때는 들어가지도 못 할 이런 곳에까지 나물을 심는 아내가 욕심 사납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 방아가 예까지 올라왔네.”

아내가 누렇게 시든 방아 줄기를 한줌 들어 올리자 박하향보다 강한 방아 향기가 진동합니다. 아내는 아는 이, 누가 방아 잎을 좋아하는데 많이 주지 못했다며 뒤늦게 안타까워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제철에는 이 둔덕에 방아가 제법 무성했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고이고이 두 팔에 방아를 안고 밭으로 올라서더니 저더러 포대를 하나 가져오라는 군요. 꼬투리에 여문 씨가 제법 있으니 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저야 당연히 투덜댈 밖에요. “아니면 여기 조팝나무들 베든가, 내가 갔다 올 테니.”

 농막까지 올라간 김에 막걸리 통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이른 오후인데도 기온이 낮고, 바람도 찬 편이라 몸도 데울 겸 한차례 쉬고 싶습니다. 멀리 보이는 아내가 어느 틈에 둔덕 위 밭의 자두나무에 매달려 가지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다리에 올라선 모습이 작지만 뚜렷합니다. 밝은 햇살을 받는 아내의 빨간 빵모자가 시계추처럼 까닥입니다.

치켜세운 톱날이 하얗게 반짝입니다. 그 위로 하늘이 새파랗고, 먼 서산 능선에는 펑퍼짐한 흰 구름이 걸쳐 있습니다. 또, 아랫녘 마을 논과 밭들이 짙은 갈색으로 판판합니다. 눈 안에 드는 밭 어디에도 양파는 보이지 않는 군요. 마을 농민들이 더는 양파가격 폭락을 견디기 어려워 재배를 포기했기 때문이겠습니다. “우리 마을 겨울농사가 올해는 좀 그러네.” 따지고 보면 월동작물의 종류가 적은 편도 아닌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농민들이 대규모 단작 농사로 떼밀려 선택의 폭이 무척 좁습니다.

 아내와 막걸리 한잔 하는 사이에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갑니다. 이내 으슬으슬 추위가 파고  드는 군요. “해가 짧으니까 좋지, 일 많이 안 해서?” 아내가 이렇게 저를 놀립니다. “동지가 작은 새해라네요. 이미 해가 길어지고 있어요.” “어머, 둔덕 정리 서둘러야겠네.” 그러는 아내를 붙들어 앉히고 막걸리 건배를 합니다. 우리부부만의 오늘을 위하여 드는 조촐한 축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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