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한가한 겨울철에는 한 해 동안 어수선해진 밭과 농장을 정리하거나 낡은 시설을 손보는 일을 합니다. 다른 농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요즘 새 창고를 짓느라 한창입니다. 밭 여기저기에서 뒹굴던 비닐하우스 자재들을 그러모아 만드는데, 놀려둔 재료들이 제법 많아 좀 놀랐습니다. 비용을 들여 새로 사야할 부자재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거의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창고를 지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으나 곧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적 길이가 긴 파이프들이 덤바우농장 곳곳에 널려있었으니 얼마나 너저분했을까요. 멀쩡한 쇠붙이들을 방치해 낡고 녹슬게 했으니 공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손해를 자청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우스용 이불도 만만치 않아요.

어떤 건 헤져서 풀풀 날리거든.” 아내가 핀잔 반 걱정 반으로 버려둔 것을 일깨웁니다. 사실, 우리 부부가 새 창고를 짓는 것도 늘어난 자재나 비품들을 보관할 곳이 더 필요해서입니다. “이거 완성되어도 다 들어갈지 모르겠네.” 아내는 완성도 안 된 창고 뼈대를 보며 지레 걱정부터 합니다. “이참에 정리해서 버릴 건 버리지, 뭐.” 제 말에 일단 아내는 눈을 흘깁니다.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만한 물건들을 쓰레기라고 합니다. 아내와 저의 ‘쓸모’에 대한 개념은 확연하게 서로 다릅니다. 쓰레기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이죠. 사소한 예를 들면 저는 당연히 버릴 병으로 의식하는데, 아내는 누군가에게 선물로 보낼 효소나 식초를 담을 병으로 인식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경우이지만, 보낼 날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언제 보낼지 모를 것을 위한 병을 장기간 보관해야 위해서는 그 크기만큼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들’의 집합이 매우 크기 때문에 집과 농장이 늘 비좁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죠. 제게는 내다 버릴만한 물건인데 아내에게는 장차 쓸모 있는 것이니 ‘당장 쓰지 않는 것’을 두고 매번 충돌이 일어납니다. “멀쩡한 펌프도 남 줬잖아!” 어떤 물건을 버리자 말자 옥신각신할 때마다 아내가 제게 하는 말입니다. 지난해 극심한 가뭄에 꼭 필요했던 것이 양수기인데 제가 일찌감치 무소용을 선언하고 이웃에게 주어버렸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죠. 돌이켜 보면 반성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10여 년 필요 없던 것이라면 그랬더라도 큰 과는 아니라는 판단도 합니다.

 

 아내와 함께 파이프를 이리저리 결속하거나 잇는 중에 “이거 낡았다고 남 주자고 했던 거 기억나?” 흔히 아시바(비계)라고 부르는 녹슨 봉 파이프를 붙들고 아내가 불쑥 말합니다. 순간 저는 찔끔했습니다만, 태연히 그런 적 없다고 눙쳤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집요한 추궁에 저는 백기를 들면서도 한마디 했습니다. “그건 버리자는 게 아니고, 요긴한 사람한테 주자는 거잖아.” 아내가 악착같이 지킨(?) 자재들 덕에 창고 하나가 올라가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아내의 미래의 용도를 위한 수집벽은 절제될 필요가 있습니다. 완성된 새 창고가 이내 꽉 차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내와 함께 버릴 것들의 목록을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작성할 작정입니다.        

 

작업 중에 철골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며 견고하다고 아내가 경탄합니다. 있는 자재를 활용한 탓에 창고 좌우의 기둥 높이가 다른 데도 비교적 튼튼하게 지어졌습니다. 그게 다 자신의 탁월한 설계 덕분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아내 곁에서 저는 전동드릴을 치켜들었습니다. 나사를 하나 끼워 파이프에 대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윙 소리와 함께 저의 시간입니다. 아내는 힘에 부쳐 파이프에 나사를 박을 수 없거든요. 덤바우의 모든 파이프에 박힌 나사는 오로지 제가 다 박았습니다. 이 외에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여럿 있습니다만, 나사를 박을 때만큼 통쾌한 경우는 드뭅니다. “거기는 뭣 하러 나사를 박고 난리야!”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