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의사는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1927년 농촌계몽을 위해 그가 만든 ‘농민독본’에 실린 이 글에서 윤봉길의사는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농민이 잡고 있을 겁니다”라는 말로 농업과 농촌, 농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농업인들은 강산이 수없이 바뀌는 와중에도 국민의 생명 창고를 채우기 위해 변함없이 땀 흘려 일해왔다. 1960년대 녹색혁명을 통해 국민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앞장섰고, 70년대 산업화부터 오늘날 많은 국민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게 되기까지 수십 년 세월 동안 농업인의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온갖 고통을 참아가며 국민의 생명 창고를 지켜온 농업인의 창고는 텅텅 비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의 3%에 불과하고 농가인구 비율도 전체 인구의 4.6% 밖에 안된다. 사상 처음 4천만원을 넘겼다는 농가소득은 도시생활자 소득의 삼분지 이 수준에 불과하다.

‘농업인신문’이 이번 호에 선정 보도한 ‘2019 농업계 10대 뉴스’는 우리 농업인이 한 해 동안 겪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10월 25일 정부가 발표한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에서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 피해, 태풍 링링과 같은 자연재해 급증, RCEP 타결로 인한 동남아산 농산물 수입우려 등 참담한 소식들이 대부분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농민수당 도입 열기가 높아졌다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앞으로 재원확보를 위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농업인들의 기대 속에 출범한 대통령직속 농특위는 출범 초기부터 농업 현안 해결보다는 장기 비젼 제시로 활동 방향을 잡으면서 농민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


 2019년 기해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해 농사의 성과만 보면 당장 폐농을 해도 시원찮을 심정이지만, 윤봉길의사의 말처럼 ‘생명창고 열쇠를 손에 쥔’ 농민들은 오늘도 묵묵히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제발 내년에는 농업인신문의 10대 뉴스에 농업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소식들로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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