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입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탓에 쉽게 일탈하는 도시인의 경향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의 기능이 통합된 환경에서 보장되는 개개인의 동등함이 빚어내는 부작용일 뿐, 익명성이 곧장 일탈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촘촘히 짜인 도시 시스템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역할을 요청합니다.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관계망이 우선하기 때문에 개성이 무뎌질 수 있습니다만, 실상은 그 반대로 나타납니다. 공적인 역할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는 도시인 특유의 의식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시의 익명성이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킨 것이죠. 차라리 도시의 진정한 문제는 배타적인 개인주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중년이 되도록 도시에서 살았던 저와 아내는 첩첩산중에서 농사를 지어보고서야 지난 도시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농촌생활이 도시의 그것과 정반대의 환경과 조건을 갖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비되는 점은 많습니다. “서울촌놈이지요?” 시내에서 알게 된 이웃이 몇 일전 농담 삼아 건넨 말입니다. 단순히 서울 출신인데 지금은 촌에 사니까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도시적 성향과 농촌적 속성이 뒤섞인 이상한 존재를 그리 표현한 것이겠습니다. 어떤 의구심도 섞여 있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와 다르다는 인상을 느낀다는 것이죠.

 농촌이주 첫 몇 해 동안 우리부부는 같아지려고 부단히 애썼습니다. 동화노력을 미덕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것은 결국 다르다는 씁쓸한 감회에 젖고 말았던 것이죠. 저보다 아내가 자괴감을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마을 농민들이나 이런저런 일로 알게 된 이들과의 관계를 얘기하며 아내와 입씨름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다른 것을 같게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것을 다르게 보는 눈을 뜨게 된 셈입니다.

 어쩌면 우리부부는 농촌에 들면서 그 실상보다는 농촌에 대한 도시적 판단기준에 얽매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연중에 도시 대 농촌이라는 엉뚱한 전투를 치른 겁니다. 앞에서 얘기한 분이 댁들은 농사를 즐기는 사람들인 것 같다, 여유로워 보여 좋다, 아마도 목표가 뚜렷한 농사를 짓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말도 하더군요. 사실, 우리 부부의 농사는 농민들 모두가 겪는 어려움과 다르지 않은 형편과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부부를 그렇게 이해하고, 기대마저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체질입니다. 굳이 같아지지 않겠다는 판단을 하자 아내는 마을 농민들과 티격태격 해가며 농산물 대신 팔아주기에 나섰습니다. 농산물 수집상인양 “다 팔자!”를 외치며 소비자와 연결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중간에서 중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공동체적인 의식이 잔존하는 농촌사회의 일원으로 그런 역할 하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도 있습니다. 관계와 결속이라는 점에서 도시와 달리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이해관계의 초점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턱대고 시작한 우리부부의 유기농은 처음에는 미친 짓이라는, 들리지 않는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동류의식이 강한 지역사회의 배타성이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농산물 대리판매가 일정한 성과를 얻기 시작하자 우리부부의 농업에 대한 주변의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경쟁상대가 아니라 보완적 이웃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판매성과는 지금껏 미미하지만, 우리부부의 조그마한 입지가 생긴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유기농 인증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데도 다들 ‘미쳤지만 곧잘 한다.’고 평가해줘서 뿌듯합니다. 농촌 삶에 또 한 해를 보태며 드는 소소한 감회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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