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사람들은 목소리가 큽니다. 아니 커야 합니다. 도시와 달리 사방이 탁 트인 들에서 거리를 두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자면 목소리가 커야 합니다. 아내와 제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나서 금세 깨달은 사실입니다. 덤바우는 사정이 더 나쁩니다. 마을 중심과 달리 낮은 산이 밭 사이를 가로막고 지형조차도 비탈이어서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전기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전화마저 불통인 곳이 많아 고작 몇 마디 말을 나누려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시콜콜 대화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사가 단순한 작업의 연속인 것만은 아닙니다만, 반복 작업이 많은 까닭에 굳이 의논할 이유가 없기도 했습니다. 바쁜 와중에 괜히 오가는 시간을 낭비하느니 대충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타협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지간의 대화도 간결해졌습니다. ‘해라 마라’체의 말이 늘어났고, 중심이 되는 낱말만을 강조하여 외치는 말투가 일상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대화체는 명확한 소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멀리 있는 아내에게 “어이~”라고 외친 다음 몸짓으로 의사표현을 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목청을 높이는 일도 줄이는 지혜(?)도 터득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친구가 휴가 삼아 며칠 우리 부부의 농장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넌지시 다 좋은데 부부 사이가 좀 건조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점이 좋아 보이냐고 물었더니 생활에 군더더기가 없어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감정표현이나 의견이 생략되어 있어 대화가 너무 실무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며 예의라는 낱말을 떠올렸습니다. 부부의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말씨나 몸가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친구는 저나 아내가 도시 살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친구에게 얘기했습니다. 생활환경과 삶의 방식이 바뀌면 교양이나 예의도 그 결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리 부부가 촌스러움에 물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목청이 크다거나 말이 짧아지면서 불쑥 행동을 먼저 한다는 식의 언행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그럴 필요가 없어 그런 것이지 심성이 거칠어져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성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도시의 정서에는 부합할지 모르겠으나 농촌에서는 말 그대로 거북살스런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제 말을 친구는 어떻게 이해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일상생활의 말씨나 몸가짐이 부부 사이에 오해를 일으키거나 곡해되는 일 또한 생깁니다. 일에 치여 신경이 곤두서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갈고 닦은 간결한 소통방식이 서로에게 거슬리는 것입니다. 엉뚱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부부싸움은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정교하게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촌스러워진 우리부부의 단순어법이 이런 싸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죠.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화해 또한 명쾌하지 않은 것이어서 불편한 침묵이 길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부부에게는 친구가 지적한 건조함을 극복하는 묘약이 있습니다. 호칭입니다. 결혼 전에 서로를 불렀던,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호칭 말입니다. 결혼 후 지금껏 그렇게 부르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호칭이 존중과 배려의 대명사가 되어줍니다. 부부이자 동료이고, 또 경쟁자이면서 감시자가 되어야 하는 농민부부에게 참으로 적합한 호칭입니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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