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바우에는 우리부부가 15 년째 기르는 개 두 마리가 있습니다. 마을에 처음 왔던 이듬해 이장이 구해준 개들입니다. 이들이 요즘 밥 때만 되면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마침내 겨울이 오나보다.” 아내가 개들에게 먹일 밥을 끓이며 하는 말입니다. 설설 끓는 개죽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면 개들이 참지 못합니다. 닥쳐올 추위를 견디고 이겨내자면 두둑이 살을 찌워야 함을 잘 아는 개들인지라 식욕이 왕성한 초겨울입니다.

 사실, 겨울은 동물들에게 혹독한 계절입니다. 우리 개들처럼 먹여주는 이가 없는 산과 들의 야생 동물들은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닥치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유독 초겨울에 대도시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멧돼지 무리들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겨울채비일 것입니다. 어린 새끼들에게 미리 충분히 먹이지 못하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어미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시 한복판까지 진출하는 것이죠. 사람에게는 큰 위협이 됩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의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죠.

 그러한 안간힘이 우리 부부의 덤바우에 그득합니다. 단단한 고치를 틀고 들어앉은 벌레들의 집은 지극히 얌전한 축에 속할 것입니다. 갖가지 무당벌레들이 판자 틈에 머리를 맞대고 빼곡한 것을 보노라면 알록달록 무슨 꽃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는 아내입니다만, 풀숲 낙엽 밑에서 맨몸으로 꿈틀대며 찬바람을 맞는 녀석들을 보고서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게 되는 게 초겨울입니다. 이렇게 작은 생명들의 앙증맞은 겨울채비는 안쓰럽다거나 애처롭다는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고라니나 멧돼지의 전투적 겨울준비는 위협적입니다.     

 우리 밭에서 조금 떨어진 뒷산 자락에 있는 가족묘지는 진작부터 파헤쳐졌습니다. 멧돼지들이 잔디를 뒤집어엎고는 지렁이 같은 벌레를 잡아먹은 것이죠. 마을 농민들 중에 멧돼지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분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아예 심지 않거나 몰래(?) 조금씩 숨겨 심는 우리 부부는 산에 가까운 데도 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느냐며 고구마며 옥수수를 심던 마을 분들이었으나 이제는 고라니, 멧돼지 등쌀에 전기철조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지금은 접은 자두농사를 지을 때였습니다. 7월 땡볕이어서 농막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화장실 다녀오던 아내가 무어라 외치며 제 옷자락을 잡고 농막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아내가 “곰이야!”라고 말하면서 문을 딸깍 잠갔습니다. 아내 말대로 바깥에서 씩씩거리는 소리도 났습니다. “그런데 저런 야생 곰이 우리나라에 있나?” 멧돼지였습니다. 자두의 단맛에 이끌려 새끼들을 거느리고 밭에 나타난 것이죠. 곰이든 멧돼지든 우리 부부는 큰 위협을 느꼈으나 자두는 따야했고, 저는 그 해 여름 내내 길고 무거운 쇠파이프를 들고 다녔습니다. 막상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어찌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멧돼지 난입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을 알게 되고나서부터는 이상한 소리만 나면 아내를 놀렸습니다. “문 잠가! 하하. 곰, 아니 멧돼지가 문 따고 들어오나? 하하.”

 온순한 고라니조차도 농작물에 주는 피해는 심각합니다. 밭 한 떼기 먹어치우는 게 하룻밤이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길이 난 고라니는 이제 웬만한 망은 물어뜯어 구멍을 낸 다음 밭에 들어오는 지경입니다. 예전과 달리 작물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웁니다. 고추도 먹느냐며 놀라던 이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초겨울이면 그 피해가 더욱 심합니다. 아내 말대로 그렇다고 유감을 가질 일은 아니겠습니다. 다만, 그들이나 우리 부부나 모질도록 단단한 결속이 필요한 계절에 당면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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