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심었으면 마을 양파 혼자 다 심었겠네.” 포트의 양파 모종들이 새들새들 하자 아내 불만이 터졌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밤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져 저도 때를 놓칠까 조바심이 나던 참이었습니다. 주섬주섬 양파 심을 채비를 하는데, 배추밭으로 간 아내가 커다란 소리로 투덜댑니다. 아시다시피 올해는 날씨 탓으로 어디나 배추 작황이 영 신통치 않습니다.

조금 심는 우리 농사가 엉망이니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들은 시름이 깊겠습니다. 무 또한 병해가 심해 작황이 고르지 않다는 군요. 제가 이런 얘기를 늘어놓자 아내는 언제 배추농사 한번 잘 지어본 적이 있느냐며 힐난합니다. 사실입니다.

 처음 지을 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필수채소들 기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유기농이랍시고 농약과 비료를 멀리 하다보면 병은 몰라도 벌레에 치여 건질 게 별로 없습니다. 아내 말대로 유기농이 벌레 먹여 살리자고 짓는 농사가 아닌데 현실은 매년 그리 돌아가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올해도 망했어!” 아내의 이런 푸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도 지난 해보나 낫고, 올해 날씨 형편에 비추어 이만 하면 그럭저럭...” 매사에 기준이 저와는 확연히 다른 아내에게 이런 말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입니다.

 

 

덤바우 농사를 놓고 또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팽팽한 침묵 사이로 애꿎은 양파모종만 쥐어 박히듯 흙에 꽂힙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아내가 “되는 게 없어.”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농사 초년에는 정말 되는 게 없었습니다만, 저는 그 말에는 불같이 화를 냈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내뱉고 나면 사정과 형편을 규정하는 성격이 있어 그에 구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되는 게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되는 게 없어도 되는 이상한 패배주의가 발동하기도 합니다. 좀 다른 말이기는 하나 우리부부는 관행농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관행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인데 농사와 합쳐 게으르고 타성에 젖은 농사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관행농이 ‘관행적’으로 활용되면서 우리 농민들의 일반화된 농사를 부정적인 것으로 부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농업 현실의 많은 문제점이 그 구성원인 농민에게 귀착된다는 인식마저 서려있습니다. 우리 농민들의 보편적 농사방식에서 문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관행농정과 관행유통 등 관련 분야에서 드러나는 나태한 관행을 반성해야 합니다.

 묵묵히 양파를 심던 아내가, 말 쓰임새도 그렇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계획을 늘어놓는 장광설도 문제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별다른 성찰도 없이 주절대는 아이디어들이 아내를 불안하게 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당장 할 수 있다고 채소꾸러미사업을 벌이자고 해놓고 뒷감당이 안 되어 아내를 애먹게 했고, 뚱딴지처럼 틀밭 위주로 농사방식을 재편한다든가, 준비도 없이 무경운을 선언하는 바람에 아내를 혼란에 빠트린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덤바우에서 제일 착해.” 일을 저지르자면 감당 안 될 정도로 따지고 드는 쌈닭이지만, 제 계획을 늘 존중해주는 아내입니다. “맞아. 내가 착해빠져서 되는 게 없어, 우리는. 호호.”

 손바닥만 한 양파밭 양파심기를 마치자 속이 후련합니다. 뒤치다꺼리는 며칠 있다가 해도 되겠습니다. 올해처럼 차돌멩이 같은 양파가 데굴데굴 굴러 나올 내년 봄을 떠올리니 문득 긴장이 됩니다. 이처럼 작물 하나에 세월이 한 움큼씩 흘러가는 모양입니다. “이봐, 목화솜이 자기 흰머리처럼 하얗게 부풀었더라. 우리 거기다가 천연염색 하자.” “따는 건 내가 할 테니 물들이는 건 낭군께서 하지지?” “없던 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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