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아세안정상회의 차 태국 방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 10개국과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을 포함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선언했다. 정부는 곧바로 협정문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하고, 관련한 시장개방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2020년에 최종 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RCEP의 타결이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개척을 확대하고, 우리 국민들의 후생을 증진함으로써 우리 국익 극대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농업계는 즉각 성명을 내고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다. 중국을 비롯한 농업강대국이 대거 포함된 RCEP협정 때문에 우리의 농산물 시장개방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그에 따른 피해도 커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3년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연구에서 ‘회원국 대부분이 우리나라 민감품목에 해당하는 농산물을 생산, 수출하고 있어서, FTA 보다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걱정했던 근거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RCEP협정 타결을 발표하면서 농업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고, 심지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RCEP 타결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에 이어진, 그야말로 한국농업에 대한 ‘융단폭격’에 다름아니라는 것이 농업계 주장이다. 특히 RCEP협정 참여국 대부분이 전통적인 농어업 국가라는 점에 주목하고, 아세안 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에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 공산품을 더 팔면 지금보다 국내 총생산(GDP)과 경제성장률이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이 더 많은 외국산농산물이 수입돼 우리 농업은 붕괴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WTO개도국 지위 포기가 단지 미국만을 향한 ‘구애(求愛)’ 용도로만 쓰이지 않을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세안 대부분 국가들이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음을 고려하면 추후 세부협상 과정에서 특히 농어업 분야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할 것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터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언급조차도 없는 상태, 여전히 ‘농업 등 민감한 산업은 최대한 보호하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상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믿어달라’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당장에 ‘공익형직불금’ 도입한다면서 쥐꼬리만큼 늘린 내년 농업예산을 보면서 어찌 믿을 것이며 어찌 기다릴 것인가. 대책없는 정부덕분에 올겨울에도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할 판이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