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 들깨 터는 철이라 요즘 마을 나들이가 잦습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이 유난스레 기름 짤 깨를 구해달라는 청을 많이 넣기 때문입니다. 갈무리하랴 월동작물 준비하랴 바쁜데도 아내가 신바람을 냅니다.

마을의 고샅길에 접어들자 괜히 나서서 가드락대지 말라고 아내가 주의를 줍니다. 오늘 들깨 흥정할 마을 할머니께서 워낙 잇속에 빠르셔서 하는 말입니다.

“터무니없이 값을 부르시지는 않잖아?”

사실, 할머니들이 부르는 값은 도시 소비자 가격에 비추어 싼 편입니다. 그러니 그 값에 부쳐줘도 비싸다고 할 이는 없습니다. 그러면 족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내는 늘 그렇듯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농산물의 시세가 해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거래 가격에 줏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농산물 가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을에서 소소하게 나오는, 양도 얼마 되지 않는 농산물 팔아주면서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는 제 말에 아내는 늘 정색을 합니다. 깨 한말 길러내는 게 소소한 농사가 아닐뿐더러 시세에 널뛰는 거래는 영 재미없다는 것입니다. 주택가 꼬부랑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같은, 정감어린 직거래가 좋은 것 아니냐고 덧붙이면 아내는 일갈합니다.

“비즈니스 이즈 비즈니스.”

 아무려나 댁에 당도하자 들깨 할머니는 마당에 들깨자루를 부려놓고 진작부터 기다렸노라고 젊은 사람들이 굼떠서 큰일이라는 둥 지청구를 늘어놓으십니다.

“아이고, 할머니. 우리도 바빠요, 바빠.”

아내는 이러면서 들깨를 한줌 쥐었다가 훌훌 흘려보내며 한마디 합니다.

“올핸 비가 잦아서 좀 덜하네, 그렇죠?”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않고 커피나 먼저 한잔하시자며 부엌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사이 아내는 들깨를 들춰가며 찬찬히 살펴봅니다.

“새댁이가 또 흠잡을라꼬?”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커피를 건네줍니다.

“어머, 뭐가 가는지 제가 알아야죠.”

“깨가 다 같은 깨지, 뭐가 다른가?”

“다들 우리 마을 깨 좋다는데, 올해도 그런지 살펴봐야지요, 할머니.”

할머니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정말 그러더냐고 재우쳐 묻습니다. 과연 그러더라고 제가 나서서 거들자 할머니는 느닷없이 허리가 아프다, 눈이 침침하다 하시며 내년부터는 들깨고 참깨고 농사 못 지으시겠다고 하소연하십니다.

“어머, 십 년째 똑같은 말씀하시네. 제가 속아서 왕창 비싸게 판 적 있어요.”

“내가 깨금 쪼메 더 받을라꼬 엄살 피운다꼬?”

“네!” 아내가 초등학생처럼 대답을 하자 할머니가 와~ 하고 웃으십니다.

 “내사 새댁이가 주는 대로 받는기지, 마.”

흥정 끝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을 마무리 짓습니다.

아내의 마무리는 또 이렇습니다.

“새댁이라고 좀 하지 마세요. 제가 나이가 몇인데요?”

“젊다카면 다들 좋다하던데, 호호.”

제가 보기에 아내의 들깨 비즈니스는 저한테만 촘촘한 논리와 계산을 내세울 뿐 정작 할머니 앞에서는 변변찮습니다.

“시내에서 장터 연다는 데 내놓으실 것 없으세요?”

예전 같지 않으셔서 들깨농사만도 벅차다고 한숨짓습니다. 묵지근한 들깨자루를 어깨에 메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아내가 작업지시를 내립니다.

“오가피 좀 왕창 베자, 많이.”

 아내와 저는 시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장터에 낼 오가피나무를 이틀에 걸쳐 열심히 잘랐습니다. 톱질, 도끼질에다가 작두질까지 동원하여 잘게 조각내었습니다. 함께 낼 농산물을 읊으며 얼마를 받아야 하나 제가 고민했더니 아내가 간단히 결론짓습니다.

“이벤트잖아.”

저는 대충 할인판매이거니 했습니다. 장터가 열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팔리면 다른 게 덤이 되고, 시간이 경과하는 것에 비례해 가격이 팍팍 깎였습니다. 잔돈푼에도 아등바등하던 평소 습관을 단숨에 날리자는 우리의 이벤트였던 것입니다.

장터가 파할 무렵이 되자 참여한 농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농산물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늘 팍팍한 생활이지만, 그날만은 풍성한 완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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