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상 도복됐는데 고작 ‘피해율 34%’ 산정…현실성 없어”

농가 항의하면 한단계 높은 ‘경장불능’ 처리, ‘고무줄’ 판정 논란

침수피해 없이 도복된 벼에서 싹이 나고 뿌리까지 땅에 내린 수발아 피해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박준호 농촌지도자남원시연합회장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받을 줄 알았으믄 당초에 보험가입을 안했을 것이요.”


최근 3차례에 걸친 태풍으로 피해를 본 벼 재배농가들이 앞으로 받게 될 벼재해보험 보상금 지급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피해에 대한 100% 보상이 아니라 자기부담률을 제외한 일부만 보상하도록 설계된 재해보험 자체에 대한 문제와 손해사정시 ‘고무줄식’ 피해산정에 대한 불만도 제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NH농협손해보험에 따르면 태풍 ‘링링’을 포함한 3차례 태풍이 지나간 후 벼 재해보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피해접수를 받았고 최근 일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조사결과 피해정도에 따라 일반피해(34% 한도), 경작불능, 수확불능 등 3가지로 분류해 판정하고 있고, 조만간 일정한 절차를 거쳐 보상금이 지급된다.


지난 2일 전북 남원시 산동면의 벼재배농가 이형식(79세)씨는 재해보험에 가입된 논 세 필지 가운데 한 필지에 대해 ‘피해율 34%’ 판정을 받았다. 당시 현장조사를 나온 손해사정사는 70~80% 가량 도복피해를 보인 두 필지에 ‘경작불능’ 판정을 했고, 한 필지는 50~60% 도복피해가 관찰돼 ‘피해율 34%’ 판정을 했다.

 

“콤바인 작업도 힘든데 수확하라고?”

이 씨는 “한 눈에 봐도 쓰러진 벼가 50%를 넘는데, 정작 34%로 판정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거니와 도복된 벼가 발아해서 땅에 뿌리까지 내려 콤바인 작업도 못할 지경인데 34% 판정이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 했다.

연로한데다 허리까지 굽은 이 씨가 걱정돼 피해산정 현장을 찾은 이 씨의 아들도 “낱알 한 톨이라도 건지려는 아버지 고집에 오늘 콤바인 작업기를 알아봤는데 수발아 된데다 벼가 뒤엉켜 있어서 수확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수확을 하더라도 제현률이 60%도 미치지 못할 것이 뻔해서 ‘수확불능’ 판정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며 판정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34% 피해를 고집하던 손해사정사는 마지못해 ‘경작불능’ 판정을 하고 다른 피해현장으로 이동했다.

 

이형식(79)씨는 당초 '피해율 34%'판정을 받았지만 콤바인 수확 작업조차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해 '경작 불능'판정을 받았다.

 

벼재해보험 가입약관을 보면, 이 씨처럼 자기부담률 20% 상품에 가입한 경우 당초 산정대로라면 34% 가운데 20%를 뺀 14%를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경작불능’ 판정을 받아 자기부담률에 관계없이 보험가입금액의 40%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보험가입금액이 100만원이라고 할 때 14만원에서 40만원으로 보상금이 늘어난 경우다.


이 씨에 대한 이같은 손해사정 과정을 지켜본 한국농촌지도자남원시연합회 박준회 회장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떼를 써볼 걸 하는 후회가 된다”면서 “몇 차례 손해사정을 지켜봤지만 실제 피해상황에 따른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정이 아니라 오늘처럼 손해사정사 맘대로 ‘고무줄식’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보상금이면 보험가입 안했을 것”

박 회장은 이어 “사실 농협직원 권유에 따라 마지못해 보험에 가입했고 대부분 농가들이 이번 피해의 경우 100%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다”며 “자기부담률 20% 상품의 경우 피해율이 얼마가 되더라도 20% 이하는 농가가 감수하는 상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80% 보상도 아니고 고작 14%만 보상받을 걸 알았다면 보험가입 농가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날 손해사정을 받은 또다른 농가 최영용(72세·남원시 산동면)씨도 경작불능 판정을 받았다. 최 씨의 경우 1천평에 가까운 논의 벼가 90% 가량 도복됐는데, 도복된 벼는 물론 태풍 ‘링링’ 때 세워준 벼에서도 발아가 될 정도로 수확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확불능’ 대신 경작불능을 선택했다. 수확불능일 경우 벼를 갈아 엎은 것을 확인한 후에 최종 판정하기 때문인데, 한 톨이라도 건져볼 요량에서 선택한 경우다. 최 씨는 “농사꾼이라면 모두 나처럼 할 것이다. 쌀 한 톨이라도 함부로 여기면 천벌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H농협손해보험 관계자는 “보험 약정에 따라 피해율이 결정되고 보험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말하고 “손해사정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해당 보험을 취급한 농협에 연락해서 추가 조사를 받으면 된다”면서 “항간에 자기부담률이 낮은 상품 가입자가 더 많은 보상금을 받는다는 오해가 있는데, 자기부담률이 낮으면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비슷한 보상금을 받게 된다”고 해명했다.

 

경작불능 판정을 받았지만 농협수매를 위해 콤바인 수확 준비를 하고 있는 최영용(72)씨 부부.

 

“신속한 피해대책으로 농가피해 보전해야”

정부는 태풍에 따른 벼 도복피해를 보전해주기 위해 피해농가의 벼를 수매해주기로 결정했다. 수매는 이달 21일부터 시작되며 수매를 희망하는 농가의 물량 전량을 매입한다. 건조벼는 물론 산물벼도 수매한다. 현재 피해지역 지자체를 통해 수매 물량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결정에도 피해농가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수매시기가 너무 늦는데다가 상당수 농가들이 이미 지역내 농협RPC에 넘겼기 때문에 수매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원시 산동면의 상당수 농가들은 태풍 ‘링링’과 ‘타파’ 때 쓰러진 벼는 ‘미탁’이 온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손해사정을 받은 후 곧바로 남원농협 RPC에 수매로 넘겼다. 나락이 잔뜩 물을 먹은 상태여서 수매중량이 높더라도 제현률이 40~5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감안하면 평년 수익의 절반도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농가는 40kg당 5만5천원을 받기로 했고, 추후 수확기 쌀값을 반영해 추가 정산된다.


이 때문에 해당 농가들은 정부가 좀 더 이른 시기에 수매를 결정했다면 더 많은 농가들이 수익을 보전했을 것으로 입을 모은다. 또한 쓰러진 벼의 ‘수발아’ 현상과 피해 면적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너무 늦은 수매시기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박준호 농촌지도자남원시연합회장은 “태풍 ‘하비기스’가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수확한 사람이 많은데, 정부가 수매해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농가가 대부분이다”며 “더구나 21일부터 수매를 한다면 최소 2주일 동안 포대째 쌓아놓게 되는데 나락이 상해서 소용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농협이 보험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보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후 가입시켜야 보상금 논란이 없을 것이고, 정부도 정확한 현장상황을 파악해 보다 현실적이고 신속한 피해보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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