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오지 마세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양돈농가들의 호소다. 특히 방역현장 순회점검을 이유로 찾아오는 중앙부처 고위직 공무원을 지목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오염원이 되어 질병이 확산될 수 있으니 제발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물론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것이지만, 돼지열병 발병이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이 몇몇 수행원과 함께 역학관계에 있는 농장을 방문한 이후 양성판정을 받은 ‘사건’임을 감안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방역현장의 이런 불만과 지적은 과거 구제역, AI 등 방역활동 과정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과연 중앙정부 공무원이나 지자체장들이 현장을 점검해야 방역이 제대로 되는 것이냐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점검현장을 옮겨 다닐 때 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방역조치를 했을 것이며, 그에 따른 효과는 있는 것인지 하는 우려가 큰 이유다. 어쩌면 현장점검은 겉말일 뿐이고 오직 사진 한 장 찍혀서 언론에 노출되거나 윗선에 ‘나는 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속내를 읽은 농가불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농가들의 불만은 언론으로도 향한다. 취재를 하겠다고, 사진 찍겠다고 몰려다니는 취재행태와 지나치게 선정적인 보도가 곱게 보이지 않아서다. 방역복 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방역현장을 활보하고 다니는 기자들은 과연 생사의 기로에 있는 농가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이런 측면에서 과연 기자 정신이니, 기자의 사명감이니,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등의 명분을 농가들이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던 2000년대 초반, 일본 언론은 발병 초기를 제외하곤 대체로 짤막한 기사형태로 보도되고 말았다. 국가의 위상과 양돈업을 비롯한 축산업 위축 및 국민적 혼란을 막고자하는 일본정부와 언론의 지향점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반면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정부와 언론은 가히 전시상황이다. 물론 상황의 심각성을 볼 때 당연한 반응일 수 있으나 국내 양돈산업의 위기와 국민적 혼란을 고려하면 지금의 정부와 언론 대응은 제고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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