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TO 개도국지위 포기…농민단체, 강력 투쟁 선언

농식품부, ‘무대책’ 일관 농업계 설득 방법에만 골몰

 

“먼훗날 일어날 피해에 대해 명쾌한 논의는 없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고, 어찌보면 허깨비를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미FTA 이후 최대 농업통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WTO ‘개발도상국 우대(S&DT)’ 유지 여부와 관련,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의 언급이다.


지난 7월 미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현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당시만 해도, 농식품부는 농업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에 대비해 농업 민감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해당부처 고위공직자의 이같은 발언을 통해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욱이 범 정부차원에서도 이미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이 굳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20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금은 국민소득 3만불, 상품수출량 세계 6위 등 ’96년 당시에 비해 우리 경제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라며 “WTO에서 다른 개도국들이 우리나라의 개도국 특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어 “향후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 결정과 관련해 국익 최우선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의 경우 농산물 관세율이나 WTO 보조금 규모 등 기존의 혜택에 당장 영향은 없을 것이고, 쌀 관세화 검증 협상결과도 영향을 받지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과 이를 둘러싼 농업분야의 반발을 감안한 발언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농식품부는 일단 이와관련해 식품산업정책실장 주도의 T/F팀을 꾸려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 논의는 검토 단계라는 전언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통상문제 관련 국제 농업협상은 시기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요원하기 때문에 당장은 가시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자국법에 따른 일방적인 보복 조치가 가능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미국이 WTO에 제출한 제안서에는 OECD 가입국이면서 G20 회원국, 세계은행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교역의 0.5%를 차지하는 나라 등에 한가지만 해당되더라도 개도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네가지 기준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


이날 농식품부 관계자는 “‘먼 훗날’의 문제를 염려해 당장 미국으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할 행위는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에 대비한 실질적인 대책 논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농식품부 측은 “현 상황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시나리오를 짜거나,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엄밀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행될 때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우리 경제 위상, 대내외 동향,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모든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농업계 등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소통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부총리는 다음달 대외경제장관회의때 정확한 정부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개도국 지위 포기 입장을 굳히고, 유일하게 반대입장인 농업계를 설득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농업계는 ‘개도국 지위 포기’로 인한 농업분야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농연은 최근 성명을 통해 “개도국 지위를 상실할 경우 관세 감축 폭이 선진국 수준으로 커지고, 농업소득 보전을 위한 각종 보조금 한도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면서 “고율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참깨, 대두, 녹두 등 소규모 경종작물과 식량작물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개도국 지위 유지가 실익이 없다는 정부의 판단은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농민단체,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WTO를 통해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면서, 비농산물 관세를 평균보다 2.0% 높인 것, 농산물 관세율도 선진국에 비해 5~12% 더 낮출수 있었던 점 등의 특혜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보조금(AMS) 또한 선진국 20%보다 감축 폭이 6.7% 적은 13.3%만 해당됐던 것도, 문제지적이 생길 경우 ‘개도국 지위’ 상실로 토해내야 한다.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미국의 개도국지위 포기 요구에, 우리 농업은 분명 시련이 닥쳤다”면서 “민감한 품목, 가령 개도국 지위 특별품목으로 보호받던 쌀, 마늘, 양파, 인삼, 감귤 등에 대해 관세장벽이 무너지거나 완화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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