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호 (사)지역농업연구원 원장

일본 불매운동(Boycott Japan!)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백색국가 제외)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국민의 일본 불매운동은 각 분야로 번지고 있으며, 이는 단기간에 그칠 일시적 현상이 아닌 것 같다. 일본은 과거를 잊었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은 역사를 잊지 못한다. 일본이 나름 속내가 있겠지만 뭔가 잘 못 판단한 것 같다.

 불매운동의 필요성이야 대부분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기에(일부 소수는 아닌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언급할 일은 아니지만, 필자는 일본의 이번 경제보복 조치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마운(?)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감추어져 있었던 것들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친일 성향의 세력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 학자, 언론, (스스로 시민단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단체들, 그리고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 등, 이러저러한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는 친일 성향이다.’라는 말을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깜빡 속을 뻔 했는데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실감하지 못하는 젊은 층들에게 그 아픔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왜 우리가 소녀상을 세워야 하는지, 몇 분 남지 않은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같이 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생활 속에 일본의 영향력이 아직도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국가의 주권과 자립경제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본 불매운동이다. 주요 산업의 부품 소재부터 자동차, 생필품, 가전, 여행.영화.게임 등 문화, 그리고 심지어 금융과 소매유통까지 우리 삶의 구석구석 일본 상품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현실(일본이어서가 아니라 국가경제가 어느 한 나라에의 의존도가 심화되어 있는 사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우리 경제구조를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개방화시대에 폐쇄경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변화와 자립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불매운동은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제 농업부문에 대해서 말해보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농업 역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분야이다. 일본은 2018년 우리 농산물 수출의 22.4%(20억 8,410만 달러)를 차지하는 1위 국가이며,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인 7억 9,910억 달러로 13위 국가이다. 수출 품목 가운데 파프리카는 일본시장이 99.5%이며, 김치도 수출의 절반 이상인 5,600만 달러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농산물 외에 심각한 것이 농기계 시장이다. 일본 농기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으며,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평야지대인 전라도와 충남지역의 경우 승용이앙기와 콤바인은 일본 제품의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국내 농기계의 경우에도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는 50%를 넘어 100%에 이르는 부품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종자산업은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지만 국내 종자의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며 일본 품종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2년까지 국내 딸기 재배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한 것은 레드펄, 아키히메 등 일본 품종이었다. 로열티 만도 매년 60억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이 개발한 품종 ‘설향’이 일본 딸기를 제치고 94.5%의 재배율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포도, 화훼 등도 최근 일본 품종을 제치고, 일부 품목은 오히려 일본에 수출하여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보면서 한 나라의 정치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립적 경제구조를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농업에서의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식량안보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농산업 분야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원천기술과 생산능력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 연구기관은 물론이고 관련 기업들도 손쉬운 수익구조보다는 자체 기술개발을 통해 기술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국내 농산업의 자립구조와 경쟁력 향상을 위한 장기 플랜을 구축.실행해야 한다.


 농민들 또한 국가적 중대 사안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일본 불매운동 참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개방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가 농민들 아닌가? 국내시장 보호와 농산업 육성 같은 거시적 정책은 정부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자립적 지역순환경제 구축 같은 당면한 농촌지역의 과제는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 수요에 따른 먹거리 정책(푸드 플랜), 지역의 농관련 산업 육성, 환경 및 생태 보존 등을 통해 지역 경제의 자립.자율성을 높여가야 한다.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어려운 이 나라를 구한 것은 농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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