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돌팔매에 떨어진 밤이나 주워 먹으려고?”

 

누구나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을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시킨 계기가 있다. 책 속의 글 한 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느낌,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농촌지도자 경기도연합회 윤세구 회장은 “남의 돌팔매에 떨어진 밤만 주워먹고 네 손으로는 안 따겠다는 거냐?”는 동네 어른의 한마디에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모처럼 소나기가 내리던 날, 윤세구회장을 만났다.

 

윤세구 회장님을 보면 중후한 신사의 모습이 먼저 연상된다. 농사는 어떻게 짓게됐나?

경기도 오산에 있는 내삼미동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어깨너머로 농사짓는 걸 보고 바쁜 농사철에는 직접 농사일을 돕기도 했지만, 군대를 갔다 올 때까지 한 번도 농사를 짓겠다고 맘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 갑자기 형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1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짓는 형편에 그런 일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내가 30마지기 농사를 도맡아 짓게 됐다.


몇 년 후, 벼농사만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축산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5마리로 시작한 비육우를 50마리 규모까지 키우는 등 근 20여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농사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던 것 같다. 

 

2000년 이후부터 평범한 농사꾼에서 농촌활동가로 급격히 변한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십몇 년쯤 지난 후 어느 날이었다. 마을 대동계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분위기를 딱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이장으로 뽑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마을 일을 보는 게 싫어서 시내로 도망갔었다. 그런데 나 때문에 회의를 못하고 동네 사람들이 다 기다린다는 말에 억지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때 마을 어른 한 분이 “넌 평생 남의 돌팔매에 떨어진 밤이나 주워먹고 살거냐?”고 호통을 쳤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얼떨결에 이장직을 수락하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목표도 없이 내 앞가림에만 급급하면서 살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깨달음, 평생 좌우명으로

 


2001년부터 8년간 내삼미동 이장 일을 봤다고 했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생이 달라졌는가?

똑 떨어지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그 전엔 나 혼자만 생각했었다면 그날 이후부터는 주변 이웃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생각이 바뀌니 할 일이 많이 보였다. 이장을 맡은 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마을회관을 건립한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지만, 마을 인근의 기업들과 농협 등 관계기관 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회관 건립 기금을 모았다. 그 결과 당시엔 큰 돈이었던 6천300만원의 협찬금을 현금으로 확보해서 마을회관을 멋지게 건립할 수 있었다. 마을어른들을 위해 노인회를 조직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그때 만든 마을회관이 잘 쓰이고 있는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

 

농촌지도자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1980년대 초반에 농촌지도자 회원으로 가입을 했지만, 주도적으로 나서진 않고 교육이나 행사만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정도였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주변 회원들의 추천으로 2000년도에 처음 오산시 농촌지도자연합회 사무국장을 맡았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예전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었다. 특별히 남들보다 잘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욕 안 먹을 정도만하자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동네 어른의 호통을 듣고 난 이후 생각이 변했다.


우애와 봉사, 창조라는 농촌지도자연합회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변화가 생겼다. 결국 농촌지도자 오산시연합회 사무국장을 8년간 연임했고, 바로 이어서 오산시연합회 회장을 6년간 맡아서 열심히 일했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내 인생에선 이때가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변화무쌍한 시기였던 것 같다.

 

오산시 연합회 활동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사무국장으로 최석근회장님을 모시고 오산시 연합회 기금 조성사업을 추진한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당시 오산시에는 충남방직 공장을 철거하고 난 공터가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 공터를 활용해 공동경작을 해서 연합회 기금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었다. 다행히 오산시하고 협의가 잘되고, 회원들이 열심히 참여해준 덕분에 3년간 약 2천만 원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다.


도시소비자에게 쌀 구입 편리성을 높이고 오산 세마쌀의 소비촉진을 위해 오산시청 민원실 입구에 즉석 도정 쌀 판매기를 운영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내가 농촌지도자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얻게됐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농협이사로 선출돼 12년간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오산시 신장동 주민자치위원장 4년, 오산시 주민참여 예산위원회 복지분과 위원장 3년 등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내가 농촌지도자 연합회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농협 이사 12년, 입바른 소리 잘하는 걸로 인정받아


농협이사직을 수행하는 중에 조합장과 충돌이 있었고, 이 일이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됐다고 하는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지역 농업협동조합이 농민을 위한 조합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조합 이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농민의 입장에서 입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어느 날 조합장이 이사회 안건으로 조합 임직원 급여 인상안을 상정했다. 한 5~10% 정도라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번에 몇 십프로를 그것도 1년 이나 소급해서 인상 시키겠다는 거였다.


조합원들이 먹고살기 힘드니 직원들도 같이 허리띠 졸라매자고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혼자 끝까지 반대해서 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이 일이 오산 지역사회에 금방 소문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로 인해서 조합쪽에 찍혀 다음 이사 선거에 낙선했다가 4년 후 다시 당선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농협을 제대로 세워야 농민들이 잘살 수 있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다.

 
 이재명지사, ‘내년에 또 한번 하자’는 말에 보람 느껴

지난 6월13일 열린 경기도농촌지도자대회는 5천여명의 회원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축사에서 ‘농가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지난 해 경기도연합회장에 선출된 이후 ‘농촌경제 활성화 지원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농촌융복합산업’ 활성화 추진을 요구하는 등 경기도 농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에 주력해 왔다.


이재명지사의 발언은 그동안 경기도연합회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활동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농업분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경기도지사가 농업·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도 이번 대회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지사가 대회장을 떠나면서 “내년에 또 한번 하자”라고 했다. 그동안 대회 준비과정에서 예산 확보 문제가 제일 힘들었는데, 지사의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경기도청과 농업기술원, 일선 시군 농업센터들과 농촌지도자회가 힘을 합쳐 당면한 농업문제 해결은 물론 미래 농업자원을 육성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노력해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지도자회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농촌지도자 회원들은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생활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농업의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이런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농업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농촌지도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 부족한 게 많지만 초심을 지켜 더 열심히 일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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