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호((사)지역농업연구원 원장)

 잊을 만 하면 언론을 통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것이 농업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뉴스이다. 역대 정권에서 농촌에 투자한 돈이 수 백조 원에 이르고도 여전히 농민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니 ‘효율성’을 좋아하는 측에서는 그 돈이 아까울 뿐 일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골 메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각종 시설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들을 증명하기 가장 좋은 사례가 농촌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시설들, 대표적으로는 권역단위사업으로 추진된 권역센터(종합센터, 방문자센터, 도농교류센터 등 명칭은 다양하다.)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시작하여,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 그리고 최근에는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이어지는 사업들이다. 흔히 ‘권역사업’으로 통칭하고 있지만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은 2014년도 사업을 마지막으로 종료되고, 현재는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만이 추진 중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한 권역에 적게는 40억 원에서 많게는 6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대부분 하드웨어 사업에 집중 투입되었다. 그 가운데 빠지지 않는 사업이 앞에서 말한 권역센터인데 보통 10억 원에서 2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사용된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권역센터 가운데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계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확인할 수 있는 광경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시작할 때 정부는 1,000개 권역 추진을 목표로 하였으니 그 예산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러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필자가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마을만들기, 권역단위사업 등 소위 ‘농촌개발사업’의 방향과 목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업의 방향이 지역주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외부인, 즉 도시민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개발사업의 시작점이었던 마을만들기사업은 농촌마을 주민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공동체 방식으로 주민들 스스로가 풀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목표는 ‘주민들의 삶’을 바꾸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목표가 ‘돈을 버는 것’으로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도시민들을 많이 끌어들일까?’가 강조된 것이다. 여기에는 성과 위주로 사업을 추진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물론 농촌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소득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편향성은 주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여러 요인들(문화, 복지, 교육, 공동체성과 교류,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 환경 등)을 간과하고 오히려 주민들이 소외되는 현상을 야기하게 되었다.


 현재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여 골칫거리가 된 권역센터들을 보자. 최소 10억 원 이상을 들여 만들어진 건물이 방치되고 있다고 문제 삼고 있지만, 막상 그 지역 주민들은 날마다 그 건물을 지나가면서도 마치 소 닭 쳐다보듯 무심하기만 하다. 저 건물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인 듯하다. 그 건물들은 외부인을 위한 숙소, 회의실, 식당, 운동시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운영자 측에서도 센터 건물이 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험객 모집에 골몰할 뿐, 지역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는 인색하다. 물론 일부에서는 지역주민들이 문화.복지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으나 흔치 않은 사례다.

필자는 여러 권역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그냥 놀릴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권한다. 그 때마다 대답은 돈이 없어서 최소한의 운영비라도 마련하려면 외부인 모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권역사업이 종료되고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집중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사업의 목표와 방향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중심 건물의 이름부터 주민센터(종합센터, 복지센터 등 표현의 차이는 있다.)이다.

‘주민 지향’이 분명하다. 기능도 지역주민들의 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좋은 변화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기능이 미치는 범위가 ‘중심지’(읍.면 소재지)에 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계활동을 통해 배후마을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면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는 권역센터와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산낭비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각 권역센터를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심지활성화사업에서 추진하는 센터의 기능을 배후마을(대부분 권역센터는 배후마을에 배치되어 있다.)에서 권역센터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복지 서비스의 제공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소통과 교류의 공간, 마을 청소년들의 교육.문화 공간, 지역 어르신들의 복지 공간 등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생각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할 수 있다. 중심지 센터와 연계한다면 그 활용도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의 장기적 목표에도 부합한다.


 다만 여기에는 적절한 프로그램의 제공과 예산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고 활용한다면 결코 투입된 예산이 아깝지 않게 사용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관계기관, 특히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처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자원은 상품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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