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용 한국농촌지도자고령군연합회장
이기용 한국농촌지도자고령군연합회장
  • 성낙중 기자
  • 승인 2019.05.31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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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참외농사 한길…“그게 내 인생이요~”

 

젊은 시절 대형 중공업 회사에서 잘 나가던 이기용 회장은 결혼 후 고향인 경북 고령군 다산면에 터를 잡았다. 부모님을 따라서 시작한 농사가 어느 덧 40년. 고생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지난 세월 덕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경제적인 안정도 찾았다. 이기용 회장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살만하니 할아버지 돼 있어


“일상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대구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나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귀한 일을 하고 있는 지 느껴져요.”


40여년전, 울산광역시에 있는 대형 중공업 회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는 결혼 후 빡빡한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인 이곳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로 들어왔다.


당시 그의 부모님은 참외를 비롯한 농사를 짓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농사를 시작했고, 한 해씩 농사지어 동생들 출가를 시키면서 맏이의 역할도 다했다.


“그때만 해도 다 어려웠잖아요. 동생들 출가시키고 나니 우리 애들이 고등학교, 대학교갈 시기가 되어 있더라고요. 또 두 살 터울인 우리 애들 세 명이 한 번에 대학을 다닐때도 생겨서 애도 많이 먹었어요. 다행히 농사가 잘 되어서 버텨온 것 같아요.”


그는 지금 아내 이옥자씨와 참외 하우스 13동, 양파 3,000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은 농기계도 발달했고, 하우스도 전자동으로 다룰 수 있지만 그가 처음 참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참외 농사는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많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집게를 쓰지만 그때는 문종이 잘라서 접붙이던 시대였고, 호박하고 참외를 접붙이는 사람들이 대단한 기술자로 칭송받았던 시대였다고 한다. 또 참외를 손으로 씻고, 땡볕에 이불 깔아놓고 역시 손으로 선별을 했던 시대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농사 지으면서 고비도 많았어요. 조금 살만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고, 아픈데도 많아졌어요. 다리도 고장났고, 허리도 고장나 있어요.(웃음)”

 

■ 태풍 피해로 하우스 몽땅 잃어


어떤 인생도 평범하지 않은 것처럼 그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한 20년전인가 어느 날 밤에 자는데 누가 부르더라고요. 마침 아내는 대구에 가 있었고. 동네 사람이 지금 하우스가 다 날아갔으니 들(밭)에 한 번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후닥닥 뛰어 가보니 앞에는 괜찮았어요. 근데 뒤로 돌아가보니 하우스 7동이 바람에 몽땅 다 날아갔더라고요. 속도 상하고 도저히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서 그날은 그냥 집에 가서 잤어요.(웃음)”


다행히 다음 날 피해를 덜 입은 이웃들이 도와줘서 함께 철거를 하고 복구를 했지만 그는 그때 만큼 날씨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또 2003년에 발생한 태풍 매미때는 지금 앉아 있는 주변의 하우스 7동이 또 날아가버리는 일이 발생해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무슨 바람 피해를 그렇게 입는지. 하우스가 두세 번 날아가니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매미 때는 육군 특공대 군인들이 와서 철거해주고 그랬어요. 또 첫 번쨰는 보상도 거의 없었어요. 두 번째 매미때는 그 해 고령군 우곡면에 둑이 터져서 고령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는데 그것 때문에 다행히 보상을 조금 받을 수 있었어요. 우곡하고 다산은 거리도 조금 떨어져 있는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다행히 득을 조금 봐서 빨리 재기할 수 있었어요.”


힘들었던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아내 이옥자씨도 거들었다.
“하우스만 날아간 것이 아니고 한 해는 수박도 물이 담아서 다 망친적이 있었어요. 낮에 동네사람들한테 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박을 땄어야 했는데 한 박자 늦췄어요. 결국 그날밤에 비가 와서 하우스가 물에 잠겼고, 오히려 경운기로 그거 꺼낸다고 식겁을 했어요. 그 해 수박으로는 10원도 못 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젊은 혈기에 욕심을 부린거였어요. 농사도 욕심 부리면 안돼요.”

 

■ 5년째 고령군지도자회 이끌어


그는 농촌지도자회에서 활동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다산면 총무부터 시작해 면부회장, 면회장을 거쳤고, 동시에 고령군 사무국장을 9년간 지냈다.
뿐만 아니라 마을이장부터 양파작목반장, 고령군농업인단체협의회장까지 지역에서의 활동도 쉼 없이 해오고 있다.


“어렵게 살았지만 일도 많이 했어요. 다 그렇게 살잖아요. 다행히 우리 고령군농촌지도자회는 임원들이 나이때도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아서 좋아요. 제가 회장을 맡고부터 5년째 매월 첫째주 목요일에 월례회를 하는데 다들 열정이 대단해요.”


그가 주도하는 월례회는 계모임처럼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서 모이는데 그 돈을 모아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고 한다. 또 1년에 3번은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대창양로원을 찾아 봉사를 하고 있는데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각자 농사짓는 농산물을 들고나와 정을 나눴다고 한다.


여기에다 7월 20일에는 고령군의 12개 농업인단체가 모여 한마음 대회를 열 계획인데 이 역시도 농촌지도자회가 주도하고 있다.


“고령군 임원들은 거의 다 한 두 살 차이밖에 안나서 굉장히 친해요. 그 모습을 지역에서도 좋게 봐주시는거고요. 한마음대회는 그동안 따로 따로 하다보니 규모도 작고, 분위기도 안났어요. 그래서 5년전부터 12개 단체가 모여서 같이 열고 있어요. 그날은 군수님도 오시고, 군의원, 국회의원들도 오시는데 고령군 농업인들의 잔치날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 힘닿는 한 참외밭에 있고 싶어


농업인들에게는 농사를 잘 짓는 것만큼이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은퇴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주변 농가에도 2세들이 대를 이어 농사에 뛰어들고 있고, 그에게도 장성한 자식들이 있지만 힘이 닿는 한 농사는 계속 지을 생각이다.


“나이 들어서 자식들한테 손 내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농사를 줄이고 우리 힘에 맞게 지으면 되거든요. 요즘은 스마트팜까지는 아니라도 하우스에 자동화 시설이 잘 되어 있어요.”


그 역시도 나중에는 지금의 하우스 13동에서 절반을 줄인 7동 정도의 농사만 지을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식들이 농사 지으러 들어오면 더 못 쉬어요.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은퇴를 해도 안한 것처럼 되요. 막말로 경로당에서 화투 치다가도 불려나가야 해요.(웃음)”


그 역시도 때로는 쉬고 싶지만 일손을 쉬면 도리어 몸이 더 아픈 듯한 기분이 들어 다시 밭으로 나간다. 이제는 농사가 삶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하우스 들어가서 예쁜 참외를 보면 마음이 설레요. 이게 어떤 맛이 날까 싶고, 수확을 하나씩 할 때마다 기쁘기도 하고요.”


지금도 그의 참외는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받고 있고, 품질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다고 한다. 같은 농사를 짓더라도 주인의 정성과 기술이 들어간 농산물의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겠지만 참외 알도 좋고, 아삭한 식감에 당도를 높이려면 그만큼 공부를 해야해요. 때로는 운도 따라줘야 하고요. 그게 농사인 것 같아요.”

 

■ 농산물 제값 받는 날 빨리 왔으면


참외는 밑천이 많이 들어가는 농사다. 하지만 40년전 2~3,000원 하던 비료가 지금 1만원이 넘어가도 참외값은 5~6만원 선인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모든 물가는 다 올랐는데 참외값은 제자리에요 아무래도 농사짓는 사람에 비해서 먹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경기가 좋아야 뭐든지 잘되는데 그거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리야 한 70년 살았으니 우리보다 젊은 세대들이 걱정이네요.”


다행히 고령군에서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지역 농업인들에게 많은 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군은 다산면 일대의 참외농사도 활발하지만 쌍림면의 딸기, 개진면의 감자, 우곡면 수박, 성산면의 멜론까지 다양한 작물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작목별로 농업대학을 운영하고 있고, 교육체계도 비교적 잘 잡혀있다고 한다.


“요즘 2세들이 많이 농사하러 들어오는데 오면 더 힘들어요. 도시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밥먹고 살아라고 하고 싶어요. 시골살이도 빡빡하거든요. 옛날 농사하고 다르게 씨만 뿌려 놓으면 되는 시대가 아니에요. 다행히 고령군은 군청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을 잘 해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농촌지도자고령군연합회와 지역 농업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이다. 40년 농사를 지어도 참외가 제일 맛있고, 참외 농사가 제일 재밌다는 그는 농업이 있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았고,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비록 굴곡은 있었지만 몸부림을 통해 이겨냈고, 노년에는 자유와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의 표정이 늘 밝은 이유다.

농업인신문, NONG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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