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매시장법 개정, 공공성 퇴색...각자 제 살길 찾기

한국식품유통학회, 도매시장 활성화 정책토론회

 

“일본에는 시장도매인이 없다. 시장도매인은 구미(유럽과 미국)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이는데, 도매시장법인과 시장도매인, 중도매인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국)정부 의도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도쿄 세이에이대학 후지시마 히로지 교수

“시장도매인과 상장거래를 같은 도매시장에 두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 상장예외가 있는데 왜 시장도매인을 두려고 하는가. 또 중도매인은 반발하지 않는가. 중도매인의 기능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도매시장정책연구소 호사카와 마사시 소장

지난 4월 19일 동국대학교에서는 한국식품유통학회가 주최한 ‘농수산물도매시장 활성화 방안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 도매시장법 개정과 내용’(도쿄 세이에이대학 후지시마 히로지 교수), ‘일본 도매시장법 개정 이후의 도매시장 전망’(도매시장정책연구소 호소카와 마사시 소장)에 대한 발제와 함께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발제에 따르면 일본 도매시장법 개정의 핵심은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도매시장에 대한 규제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개설자 임의로 도매시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도매시장의 유통주체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는 뜻) 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도매시장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명분은 희미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의 도매시장 상황도 비교됐다. 후지시마 히로지 교수는 “일본내 가장 큰 경제지인 니케이신문에서 도매시장 단계를 건너뛰고 이온그룹(대형유통업체)이 직접 산지 직거래로 선어를 판매하면 신선유통이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신유통’을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이온그룹은 대부분의 선어를 도매시장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지시마 히로지 교수는 이온그룹의 선어유통이 도매시장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산지 직거래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으로 경쟁업체보다 높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언론뿐만 아니라 농림수산성 조차 도매시장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면서 “농림수산성은 도매시장의 신선식료품 경유비중이 감소하기 때문에 도매시장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업 생산물은 모두 신선 농수산물”이라고 강조했다.


호소카와 마사시 소장은 “일본의 경우 전국단위로 기준가격을 정하는 시장은 수산의 토요쓰시장과 청과의 오타시장이 있다”면서 “이들 시장이 무너지면 도매시장 전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중점적으로 관리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호소카와 마사시 소장은 “일본 정부는 지난 제8차 도매시장정비기본방침에서 각 지역의 거점시장을 중심으로 주변시장으로 물량을 분산하는 ‘집산시장 체계’를 발표한 바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했다”면서 “정부가 중앙도매시장 단위로 거점시장을 만들어서 관리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합토론자로 나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대형유통업체와 생협 등은 도매시장에서 많은 물량을 거래한다”면서 “이는 도매시장의 전문성과 산지가 자기 농산물에 대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매시장 경로에 주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병률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우리나라는 유통시장 개방 당시 대형유통업체가 먼저 움직이면서 산지의 영농조합과 농협 등을 경쟁자로 만들었고, 제한된 농가에만 납품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산지를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국대학교 권승구 교수는 “유통시장 개방 이후 소비지 시장의 주도권이 도매시장에서 대형유통업체로 넘어갔다”면서 “대형유통업체는 리스크를 중도매인이나 납품업체에게 전가하고, 이들은 다시 산지에 리스크를 전가하는 ‘리스크 하방전달’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식품유통연구원 이동혁 원장은 “도매시장의 거래제도와 관련해서 출하자들이 끌려다니고 있다”면서 “이는 출하조직의 적극적인 주장과 단합된 역할이 없기 때문으로, 일부 농업인단체가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안재경 단장은 “산지가 고품질 농산물을 도매시장으로 출하해야 기준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특히 농산물 생산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위태석 연구관은 “물류 단위를 키우고 소비지에 선별시설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도매시장이 가진 대량거래의 장점을 확대하고, 산지 선별시설이 안고있는 가동률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소비지에 선별시설을 설치해 연중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경상대학교 박신욱 교수는 “도매시장의 기준가격 형성은 생산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며 “도매시장의 공익성으로 농민 보호만을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의 불신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김민호 사무관은 “도매시장은 효율성 추구와 공공성 유지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면서 “유통주체간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도매시장의 발전적 전략과 사회공헌에 이바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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