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타버린 마을과 산림, 폐허로 변해

주민 대부분 70대 이상고령 몸만 빠져나와

경로당서 공동생활, 불편하고 악몽에 시달려

주민들 “잠 잘 집이라도 빨리 복구가 됐으면…”

현장르포-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마을

지난 9일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마을. 주민 김철수씨와 황철순 농촌지도자고성군연합회장, 김은수 속초시연합회장(왼쪽부터)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산불이 났는지 며칠이 지났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안죽고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지요.”


강원도 지역 곳곳이 아비규환이다.
지난 9일 고성군 인흥리의 한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매캐한 불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을로 들어서니 그날 화마가 휩쓸고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주택과 창고는 불에 타 벽돌까지 무너져 내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또 매캐한 불냄새는 숨 쉬는데 어려움을 줄 정도로 가득 베어 있었고, 마을 뒤 새까맣게 타버린 소나무들도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마을에도 전날 바람이 굉장히 불었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불똥이 뒷동산 소나무숲에 옮겨 붙으면서 집과 창고가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의 말대로 지난 4일 저녁 7시경 고성군 원암리에서 시작된 화재는 초속 26.1m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 시내까지 퍼져나갔다. 


불에 타 주저앉은 집터 한쪽을 둘러보던 김철수씨(농촌지도자고성군연합회)는 “지금도 그날 밤을 생각하면 잠도 안오고 아찔하다”고 말했다.


“산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보니 불길이 우리마을로 안 올 것 같았어요. 잠깐 마음을 놓았는데 순간적으로 바람이 방향이 바뀌었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사이에 불길이 마을에 거의 다 닿았어. 옷이고 뭐고 하나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지 뭐…”


산불이 나도 20~30분전에 알게 되면 뭐라도 챙겨 나올 수 있는데 이번에는 트랙터도 못 꺼내와서 다 타버렸고, 집안에 있던 가전이나 가구들도 다 타버렸다고 한다.


“태풍이나 홍수가 와서 농경지가 유실되고 침수됐을때는 내년에 다시 잘 지으면 되지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집이 파괴가 되니 나를 비롯한 마을주민 모두가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어. 70평생 이런 일은 처음인데 우선 주민들이 잘 곳이 없고, 갑작스럽게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니까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요. 집이라도 빨리 복구 쫌 해줘요.”


지난 11일 관계부처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해 1명이 사망했고, 산림 약 1,757ha와 주택 516채가 불에 타는 등 지역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또 8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곳 인흥리 마을도 34가구가 살고 있고, 대부분의 집은 불에 탔다. 또 그나마 70대 초반인 그가 가장 젊은 층에 속할 정도로 고령화가 돼 있는 곳이다.


이날 동행한 황철순 한국농촌지도자고성군연합회장은 “산불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고, 보상 절차도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아직 조사중이라 답답하다”면서 “김철수 선배님도 몇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 주민들이 터전을 잃은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가 크다는 속초시 장천마을로 이동중에도 타버린 소나무숲과 가옥을 여러곳 볼 수 있었다. 장천마을에서는 한 농가를 찾았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멀리서도 새까맣게 타버린 집이 보였고, 건너편 맥주창고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집은 기둥만 남아 있었고, 곧 다가올 모내기에 쓰려고 했던 이양기가 역시 뼈대만 남아있었다. 한켠에는 이 집에서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 두 마리가 털이 그을린 채 힘없이 앉아 있었다.


김은수 한국농촌지도자속초시연합회장은 “같은 농업인으로서 할 말이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면서 “우선은 정부가 피해 주민들이 빨리 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철수씨를 만나는 동안에도 그의 핸드폰에는 안부전화가 드문드문 걸려왔다. 그리고 그는 애써 밝게 답을 했다. “산 것만 해도 어디야. 밥 잘 먹고 있을테니 조만간 만나자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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