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호 농촌지도자 , 전국농업기술자협회 단양지회장

올해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자동 감자파종기 등 감자기계화 연구과제 시범사업이 농업현장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농업인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력으로 만든 감자파종기를 ‘퍼주기식’으로 보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자기계화 판매시장이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농진청은 감자파종기 등 감자 관련 농기계를 100%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감자기계화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 24개소에 1개소 당 6천만원 상당의 감자파종기 등을 시범사업으로 보급하고 있다. 연간 전체 판매실적이 50여 대에 불과한 감자파종기 자동화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물량을 보급할 예정이다.


여기서 문제는 농진청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감자파종기가 현장시연회 등을 통해 기존 기업들이 만든 기계보다 성능이 월등히 떨어지고, 사용도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범사업으로 한번 보급된 감자파종기는 반품 또는 사업포기 자체를 할 수 없어서 농가들의 거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하급기관인 농업기술센터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문제점을 보완해달라고 농진청에 지속적으로 연락했지만 허사였다는 말도 들린다.


이 때문에 감자재배농가들이 감자파종기를 외면하고 있다. 농진청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벌이고 있는 시연회에서 나타난 문제의 실상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 기존 감자파종기 제조업체들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수 년간 연구개발한 장비들이 자칫 판매경쟁도 못해보고 퇴출당할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이번에 농진청이 보급하고 있는 전자동 감자파종기를 보면서 기존 제조업체보다 더 발전된 기술력을 볼 수 없는 것에서 대단히 실망하고 있다. 오히려 5~10년 경력의 제조업체 기술력을 도용해서 비슷하게 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가슴이 아프다.


최근에 열린 2019년 상주농기계 박람회 때 농업기술센터 공무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농진청이 시범사업을 강압적으로 추진한데다 연·전시회를 통해서 홍보한 전자동 감자파종기의 기술력이 너무 과대홍보 되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지 연구과제 실적을 높이기 위해 ‘100% 보조금’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실용화되지 않을 기술을 억지로 보급하는 것이고, 결국 귀중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지자체는 감자파종기의 장비를 농가에 공급하기 위해서 2천 만원 미만으로 50%보조나 70% 보조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런 보조사업은 전국에 몇 곳 안된다. 그래서 필자가 농진청의 100% 보조사업은 연구실적을 과대포장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보는 이유다. 또한 이런 이유에서 농진청의 시범사업은 불필요하고 국내 제조업체들에게 ‘갑질’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농진청의 감자파종기는 기술력 검토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단순히 ‘안전검정’만 받은 수준의 제품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반드시 기술력에 대한 국가 검정을 다시 받기를 제안한다.


감자를 파종한 후 결주율이 10~20% 정도 발생하면 안된다. 또다시 비싼 씨감자를 사야하고, 일손을 구해서 일일이 보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 천 만원에 달하는 기계를 국가가 거저준다고 해도 농업인이 외면할 수밖에 없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모든 농기계는 국가 검정기관으로부터 검정을 획득하고 나서 실수요자인 농업인에게 보급해야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시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검증도 받지 못한, 성능이 미달되는 장비를 막대한 국가 자금으로 24개소에 공급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적폐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