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나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거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태어날 때 아무것도 손에 들고 온 것이 빈손으로 태어난 것처럼, 죽어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말로 인생무상을 얘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인생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돈 욕심, 명예 욕심 버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일 속에서 보람을 찾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한국농촌지도자 제주도연합회 안치호회장을 만나봤다.

 

농업·농촌 선진화 공로 대통령표창 영광

 

농촌진흥청 개청 50주년 기념식 때 농업·농촌을 선진화로 이끈 공로자로 선정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현재 한국농촌지도자연합회 회원 중에도 대통령표창이나 산업포장과 같은 큰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있지만, 이 상은 좀 특별한 것 같다.


-한국농촌지도자 서귀포시 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2012년5월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가문의 영광이랄수 있을 정도로 큰 상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과분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표창을 받은 날이 농촌진흥청 개원 50주년 기념식이라는 특별한 날이라 다른 분들보다 좀 더 도드라지게 보였던 것 같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운이 좋았을 뿐이다.

 

2012년 당시 총 6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대부분 농진청 출신들이었고 순수 농민은 구미쌀연구회 정태근회장과 안치호회장 둘 뿐이다. 공적조서를 보면 연인원 1만4천명이 관람한 서귀포농업전람회 개최와 주요병해충 방제도감 발간 등의 활동이 기록되어있던데,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 아닌가?


-농촌지도자 서귀포시연합회장을 할 때, 이론교육과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 두 달 코스의 한라봉재배 교육을 실시했었다. 교육에 필요한 교재도 예산만 지원받고 내용은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대부분의 농업기술 교육이 농업기술센터와 같은 유관기관 주도로 이뤄지는데 비해 민간단체 자체적으로 교육을 실시한 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특이했기에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나머지 농업전람회개최나 선진농장 견학, 농산물 소비판촉과 같은 활동은 농촌지도자연합회 임원들이라면 다들 열심히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평가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바보 없고 공짜 없다

 

안치호회장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을 들어보면 ‘의리’와 ‘부지런함’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


 -누군한테 들은 얘긴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좋은 얘기만 해서 그렇다. 평소에 ‘인생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돈이든 명예든 자꾸 욕심을 부리고 내 손 안에 움켜쥐려고하면 그만큼 사람관계나 단체 활동이 소극적이될 수밖에 없다. 손을 움켜쥐고 악수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바보 없고 공짜 없다. 남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은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 금방 안다. 또 농사꾼이라면 세상에 공짜 없단 얘기에 쉽게 공감할거다. 밭에 한번 가본 사람하고 두 번 가본 사람의 소출이 다른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진심으로 사람들 대하고 먼저 솔선수범해야지만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다행히 주변에 같은 뜻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여태까지 욕은 안 먹고 살아온 것 같다.

 

거실 한 켠이 온통 감사패와 상패, 임명장 등으로 가득하다. 농촌지도자회 활동은 물론이고 이장, 주민자치위원장, 청년회의소회장, FTA 범도민 특별대책위원 등등. 아무리 부지런하다고 해도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1994년, 37살 나이에 처음 농촌지도자회 회원이 되었다. 새마을지도자를 맡는 등 나름대로 마을 일만 열심히 하던 내가 사회활동에 눈을 뜨게 된 게 이때부터였다. 특히 지도자회 가입 후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표선면 청년회장 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된 게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당시 표선면청년회 회원이 1천명이 넘었다. 1년 동안 청년회를 이끌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고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지역사회 현안해결을 위해 함께 토론하고 함께 몸을 부대끼며 봉사활동을 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평생 제주에 살면서 활동할 수 있는 기초를 그때 다 만들었던 것 같다.

 

전국최초 면 단위 지도자회관 건립에 보람 느껴

 

제주공항에서 표선면으로 오는 대로변에 있는 현대식 2층 건물 앞에 ‘농촌지도자 표선면회’라는 표지석이 보였다. 호기심에 들러봤더니 1층 현관 입구 전면에 ‘한국농촌지도자 표선면회 회관 건립 추진위원회 명판’이 있어서 놀랐다. 전국을 찾아봐도 면 단위 지도자회관이 있는 곳은 드문 것 같다.


-2007년에 표선면회장에 선출되면서 바로 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회원들과 함께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서 땅부터 산 후에 사방팔방 찾아다녔다.  다행히 우리의 뜻이 알려지면서 행정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했고 많은 기관단체에서도 후원금을 보내줬다. 2008년2월에 사업비 3억2900만원을 들여 연면적 254.7㎡ 지상 2층 규모로 완공된 지도자회관은 지금도 ‘표선면 미래관’이란 이름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 땐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큰 일이었다.

 

2017년부터 표선면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았었다. 2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이 지역언론에 자주 소개되었다. 지도자회 활동만으로도 굉장히 바뻤을텐데,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20년 넘게 지도자회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1회성 행사도 중요하지만, 뭔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역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다.

주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활동을 위한 기반 조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지역내 다양한 능력을 갖춘 귀농,귀촌인들의 재능기부를 유도하고 주민들이 자부담으로 강사비를 지급하는 체계도 도입했다. 동아리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발표회와 경연대회도 적극 개최했다. 이런 활동들이 인정돼 2017년말에 제주도내 17개 읍면동 중에 최우수 주민자치위원회로 선정됐을 때 정말 기뻤다.

 

2018년 제 71주년 전국농촌지도자대회에서 산업포장을 받았다. 여러 가지 수상 이유가 있지만 제주농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게 눈에 띈다.


-지난해 과분한 상을 받으면서 참 많이 쑥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9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를 돕다 보니 남들보다 일찍 농사일을 접했다. 일찌감치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했었고 결혼과 동시에 독립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는 70년대 말부터 도입된 감귤 농사가 한창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솔직히 내가 살기 위해서 감귤농사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열심히 습득했고 관련기술도 열심히 배웠다. 굳이 다른 점이라면,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데 좀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 정도다. 물론 이것도 지도자회 조직과 동료 회원들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냈을거다. 산업포상은 제주도연합회원들을 대표해서 내가 받았을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내가 사는 표선면에는 60여개의 단체가 있다. 제주도 회장의 중책을 맡다보니 꼭 참석해야하는 회의나 행사도 많다. 평균 1주일에 10번 정도 모임이나 행사가 있다. 4천평 감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면서 모임에 참석하려면 사실 힘에 부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딱히 내세울만큼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고 명예를 높인 것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인생 뭐 있나,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가는 건데, 욕심 버리고 열심히 살다보니 기회도 영광도 더 많이 생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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