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탁판매원칙, 공영도매시장의 존재 가치

중도매인 수탁 허용할 경우 경락가격 하락 우려

수입농산물 대상 상장예외 규정...대법원 판례 회피위한 편법

‘농안법 제31조(수탁판매의 원칙)’에 따르면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로부터 위탁을 받아야만 도매행위를 할 수 있으며, 중도매인은 도매시장법인이 상장한 농수산물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탁판매 원칙은 공영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법인과 출하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근본이다. 거래교섭력을 갖추지 못한 농업인 출하자 입장에서 ‘수탁판매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할 공영도매시장의 존재 가치이다.


최근 의원입법을 위해 논의되고 있는 농안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과 문제점을 각 안건별로 집중분석한다.

 

◆ 분산주체까지 수탁 허용...사실상 ‘수탁판매원칙 폐기’


최근 수탁판매 원칙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농수산물 도매시장 유통단계 합리적 방안 모색 간담회’를 개최한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농산물 유통비용의 문제가 고착화된 공영도매시장의 유통구조에 기인한다는 명분으로 농안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박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농안법 개정안이 특정 유통주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모양세로 보인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도매시장을 경유하는 수입과일을 상장예외품목으로 규정하고, 모든 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을 의무적으로 도입하고, 개설자가 도매시장법인의 공모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농안법 제31조(수탁판매의 원칙)’에 중도매인을 포함시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모두 출하자로부터 위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수탁거래의 주체가 늘어나는 1차원 적인 문제가 아니다.

 

현재 도매시장에서는 도매시장법인과 시장도매인, 상장예외중도매인의 수탁판매가 가능하다. 여기에 분산기능의 핵심인 중도매인까지 수탁판매의 원칙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수탁판매의 원칙 자체를 무색하게 할 뿐이다. 사실상 ‘수탁판매원칙 폐지’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이다.


박 의원의 생각대로 중도매인 수탁허용이 유통단계를 축소시킨다 해도 출하자가 부담하는 도매시장까지의 유통비용은 그대로 이며, 농안법의 범주를 넘어서는 중도매인 판매마진만 높아질 수 있다. 더욱이 중도매인의 수탁허용에 따른 출하선택권 확대는 본업인 경매참여를 소극적으로 변화시켜 농수산물의 경락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출하선택권 확대는 증권회사가 늘어나는 것과 주식가치의 변화는 영향이 없으며, 부동산중개사무소가 늘어난다고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또한 박 의원의 농안법 개정안은 ‘농안법 제31조(수탁판매의 원칙)’ 제②항에 “도매시장법인의 집하능력이 부족하거나 도매시장에 반입되기 전에 1차로 가격이 결정되는 등”의 문구를 추가하고 있다. 이는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수입농산물을 상장예외품목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최근 대법원은 가락시장의 개설자(서울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분별없이 수입농산물을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농안법의 미비를 주장한 바 있다. 현재도 수입과일에 대한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대한 행정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정황 등은 해당 농안법 개정안이 마련된 배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 전송거래 늘리자고 ‘수탁판매원칙 폐기’?


더욱이 최근 열린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법인협회)의 ‘수탁판매원칙 폐지’ 주장(본지 제1248호 3면, 도매시장법입협회 기자간담회 ‘논란’)과 시기를 같이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법인협회는 기자간담회 이후 본지의 요청에 따라 추가로 공개된 공식자료(‘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관련 의견’_제출기관:(사)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에는 ‘수탁판매원칙 폐지(도매시장법인 매수금지 폐지)’ 제목과 함께 부가설명이 달려있다.


법인협회 공식자료는 “위탁(도매시장법인 수탁)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물량수집이 어려운 경우가 있음. 특히 거래규모가 적은 지방소재 도매시장법인의 경우 갈수록 농수산물 수집(시장조성)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됨.”, “각 도매시장에 산지 직접출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 대규모 도매시장에서 중소규모 도매시장으로 전송공급이 많아지게 되고, 이는 유통단계와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됨.”, “2012년 8월 매매방법 자유화 조치와 관련, 구매자가 미리 요청하는 물량에 대한 도매시장법인의 적극적인 수집업무가 요구됨.”, “농수산물의 수급 불안문제가 발생해도, 도매시장에서는 수탁판매원칙으로 인해서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불가능함.”이라며 “→따라서 수탁판매의 원칙을 폐지 조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농안법 시행규칙 제26조(수탁판매의 예외)’는 6가지 경우에 대해 도매시장법인이 농수산물을 매수하여 도매할 수 있는 경우를 두고 있으며,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다른 도매시장으로부터 매수하는 경우(제3항)에 대해서도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송거래의 대부분이 중도매인을 거치기 때문에 불필요한 유통마진이 발생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송거래의 확대를 위해 ‘수탁판매원칙’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닭 잡는데 소잡는 칼 쓰는 격’이다. 또한 법인협회의 회원사 몇 곳(가락시장, 2군 광역시권, 3군 기타시권)을 확인한 결과 해당 내용을 처음 접했다는 공통된 반응이다.


박 의원의 농안법 개정안과 법인협회의 주장은 각각의 명분은 다르지만, ‘수탁판매원칙 폐지’로 귀결된다. 그러나 수탁판매원칙이 폐지되는 어떠한 상황도 농업인 출하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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