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안전성 외면하고 소비자 권리만 앞세웠다”

농장·유통단위 안전성 담은 종합대책 마련돼야

소비자·농가 부담 가중, 현장에서 환영 받지 못해

 

정부는 지난 2월 23일부터 달걀에 생산 일자를 표기토록 의무화를 추진했다. 생산농가들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탓에 6개월간 계도기간을 거친 후 이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를 충분히 해소하고 본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산란일자표기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정부가 강행한 이 제도의 취지는 소비자 알 권리와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계란 안전성 대책은 전무한 졸속 제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당초 산란일자표기는 생산일자가 가장 가까운 달걀만 소비될 수밖에 없어 달걀 소비패턴의 큰 변화와 함께 막대한 재고 물량으로 인해 농가들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측됐다. 그리고 계도기간을 거치고 있는 현재, 시행전 예측했던 우려가 곧장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반응이 대세다.


시행 한달을 넘긴 현재 일선 현장에서 산란일자가 표기된 달걀은 얼마만큼의 환영을 받고 있을까? 본지는 대형마트, 계란유통인 등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산란일자표기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왔다.


대형마트 신뢰, 산란일자 표기 중요치 않다

“산란일자표기는 들어보긴 했는데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대형마트를 신뢰하다보니 생산일자를 따져가면서 신선도를 판단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찌됐든 소비자들이 좀더 신선한 달걀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라면 환영할 일이죠.”


지난 19일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만난 소비자 김 씨(53세·여)는 달걀을 구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달걀 껍데기에 적힌 앞자리 4개 숫자가 산란일자를 가리킨다고 알려주자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 그런데 포장지에 표시해도 충분하게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달걀 표면에 복잡한 표시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형마트 담당자는 “산란일자표기 시행 한달 째 맞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선호하는 브랜드와 가격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 산란일자표기에는 이렇다 할 변화를 느낄 수 없다”면서 “소비자들은 자주 찾는 마트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달걀의 새로운 정보를 요구하거나 관심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대형마트 내 달걀 판매코너를 가득 메운 달걀들 대부분은 난각에 산란일자가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산란일자를 확인하며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산란일자 표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산란일자표기 제도는 오는 7월 23일까지 계도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이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바로잡고 이 제도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 대형마트 등 소비자들의 왕래가 많은 곳은 대부분 산란일자표기 계란이 유통되고 있는 반면 소비자들의 왕래가 뜸한 전통시장 등은 기존 방식대로 달걀이 유통되고 있었다.


하지만 산란일자를 확인하고 달걀을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달걀 껍데기에 산란일자가 적혀있다는 정보를 아예 모르거나 관심조차 없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살충제’ 파동 이후 안전성 논란으로 달걀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것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나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산란일자가 표기된 달걀의 납품 요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란유통회사 관계자는 “대형마트별로 선호하는 날짜가 다르지만 생산일자 3일, 5일, 7일 기준으로 주문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현재 달걀 생산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 산란일자표기로 인한 장단점을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한국계란유통협회 하도봉 사무국장은 “너무 성급하게 제도가 시행되다보니 일선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측면이 많지만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는 정부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산란일자 표기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터라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없겠지만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산란일자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란일자보다는 유통과정 개선부터 ‘한목소리’

정부가 산란일자표기를 강행한 것은 ‘살충제달걀’ 등 품질 논란이 거세지면서 그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정부가 달걀 안전성 대책을 강구하면서 지나치게 소비자의 알권리에만 치중한 나머지 농장단위나 유통과정의 안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농가나 유통인들은 달걀이 소비자에게 최상의 품질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전체 유통과정에서 콜드체인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제아무리 달걀 품질이 우수하고 신선하더라도 유통과정에서 오염되거나 품질이 저하될 수 있는 위험성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달걀 안전성 논란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농장단위에서 안전하게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되지 않아 산란일자표기가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높다.


전북대학교 류경선 교수는 “포장지에 품질기한을 표시해 소비자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산란일자는 달걀의 판매 전략으로 자발적인 표기를 권장해야 한다”면서 “계란의 유통은 신속함보다 안전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산란일자표기는 냉장유통 시스템의 완전한 구축 이후 시행 여부를 가늠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 당진농장 강종성 대표

“과도한 투자 연속, 매일 살얼음판 걷는다”

 

 

“‘산란일자표기’, ‘식용란선별포장업’ 등 계란산업에 놓인 제도가 과연 산업을 위한 것인지는 따져볼 노릇이지만 과도한 투자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제도를 무시할 수도 없는데다 이 제도를 회피한다면 계란 판매도 힘들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소재한 당진농장 강종성 대표(전 한국계란유통협회장)는 최근 5억여원을 투자해 식용란선별포장업에 대응한 시설투자에 나섰다. 계란 한판 팔아봐야 남는 것도 없는 현실에서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대형마트 등 거래처에서 산란일자표기, 식용란선별포장업을 거친 계란만 납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시설투자를 강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선별포장업 시설로 최고 품질의 계란을 유통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은 계란 유통인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고 환영할 만 하다”면서 “다만 산란일자를 표기하는 것은 신선한 계란만 유통되는 구조로 변질돼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산란일자표기로 인해 생산된 날짜부터 최대 7일이내 계란만 판매되고 나머지는 반품 물량으로 예측되고 있어 시범사업이 종료된 이후 계란 유통시장은 한바탕 회오리가 불어닥칠 것이 뻔하다”면서 “산란일자표기는 어떠한 대책도 있을 수 없고, 어떠한 대안제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폐기되는 것이 옳은 처사이다”고 밝혔다.


특히 강 대표는 “생산된지 7일 이내 계란만 선호하다보면 날짜가 넘어선 물량은 가공용 등 헐값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어 농가나 유통인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며 “일정한 수익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계란값은 인상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도 비싼 값을 지불하고 계란을 구매하게 돼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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