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도전이 내 삶의 원동력”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제독으로 이름을 알린 윌리엄 프레데릭 홀시는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단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잘 난 사람들의 성공만 주목받고 성공한 사람들의 도전만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요즘 시대에 평범하지만 위대한 도전으로 주목받는 농사꾼이 있다. 바로 한국농촌지도자대구광역시연합회 배선관 회장. 1만 평의 대추농장과 채소밭 4천500 평, 벼 논 3만여 평을 경작하고 있는 배선관 회장을 경북 경산시 와촌면 동강리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대구광역시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농사는 왜 경북 경산에서 짓고 있나?
경산으로 농장을 옮긴 게 벌써 13년이 지났다. 원래는 대구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시아폴리스라는 복합산업단지가 동구에 조성되면서 농토가 수용됐다. 평생 천직으로 여기던 농사를 포기할 순 없고, 가까운 곳에 농사지을 만한 땅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 대구 집에서 농장까지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일하다 쉴 때 조금 불편한 거 말고 특별히 어려운 건 없다. 예전에 농사짓던 곳 땅값이 많이 올라서 속상한 거 빼고는.

 

평생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정착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 처음 이곳에 올 때 창고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조금 갈등이 있었다. 농기계와 영농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를 만들 때 내부에서 크레인이 작업할 수 있는 규모로 설계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걸 공장을 만드는걸로 보고 민원을 많이 제기했었다. 나중에 오해가 풀려서 잘 해결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대추농사꾼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오늘도 대추나무 전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수령이 오래돼 보인다.
-경산에 정착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사실 대추나무 농장이었다. 인수 당시 약 1만평 규모의 농장에 수령이 8,9년된 대추나무가 식재돼 있었다. 그런데, 전에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임대농이어선지 나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상태가 형편없었다. 대추나무 빗자루병이 잔뜩 퍼져있었다. 덕분에 싸게 농장을 인수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상태가 안좋았다.

 


병든 대추농장을 살린 건 도전과 집념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병에 걸린 대추나무 농장을 인수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일이다. 뭔가 따로 생각한 대책이라도 있었는가?
-원래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남들처럼 똑같이 하는 것을 싫어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농사는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병든 대추나무로 가득한 농장이었지만, 남보다 더 노력한다면 살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대추농장을 살렸나?

-땅심을 높이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농장을 인수한 첫 해 부터 6년 동안 매년 20Kg짜리 깻묵을 4,000포대씩 뿌렸다. 또 3년 동안 수없이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본청으로 찾아가서 담당 지도관을 만나 어떻게 하면 빗자루병을 고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병든 나뭇가지를 꺽어서 가지고 가기도 했고, 농장 흙을 배트병에 담아서 가져가기도 했다. “우야면 좋겠노, 어찌됐든 나무는 살리고봐야 안되겠냐”며 매달렸다. 한 2년 지나니까 나무가 조금씩 달라지는게 보이더라. 농진청 지도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4,5년이 지나면서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신품종 벼 재배, 힘들지만 보람 느껴

벼농사를 3만평 정도 한다고 했는데, 그 중에 2만5,00평 정도에 종자용 벼를 재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자용 벼 재배는 재배과정이나 조건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들은 잘 안하는데, 종자용 벼 농사를 많이하는 이유가 있는가?
-대구에 있을 때부터 종자용 벼 생산에 참여했으니까 벌써 17년째다. 그동안 하이야미, 영호진미, 새칠보벼, 미화 등 50여 종의 신품종 벼 종자를 생산했다. 사실 농진청 작물시험장에서 제시한 재배력대로 신품종을 재배하는건 쉽지 않다. 하지만, 시키는대로만 하라고 했다면 진즉에 중단했을 것이다. 시범재배 과정에서 비료와 물 관리, 병충해 방제 등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담당 지도사와 토의를 거쳐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해서 최적의 생산 조건을 찾아내는 과정이 정말 재밌다.  내 손을 거쳐 탄생한 신품종 벼가 농가들에게 보급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55살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농사만 짓기도 힘들었을텐데 뒤늦게 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있었나?
-대추농사를 시작한 지 2년 지난 2006년에 경운대학교 한약자원학과에 입학했다. 농장에서 생산된 대추를 가공해서 팔고 싶어서 한약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에 대구집을 출발해 경산농장에 가서 일하고 오후 2시쯤 준비해서 구미에 있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원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다. 5년 동안 학교를 다니는게 힘들었지만 포기하지않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한약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남다른 도전 추진력

 

평소 자기계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다.
-1974년에 농촌지도자회 회원이 되면서부터 각종 교육에 열심히 참여했다. 처음엔 농촌지도자 회원으로써 남들에게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필요한 영농기술을 습득하는데 주력했다. 뭔가 남들과 다른 도전을 하려면 그만큼 많이 알아야만 했다.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하는 전문기술과정 시설원예분과 교육과 일본 다끼종묘주식회사 원예교육, 경북농민사관학교 한방명품화 과정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다. 현실이 어떻고 여건이 어떻고 하면서 지레 포기하는 건 그만큼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풍족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 다 키우고 이만치 먹고 살만하게 된 것은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온 인생 역정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할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 확장 이전을 임기 중에 꼭 성사시키고 싶다. 대구의 경우 다른 대도시 지역과는 달리 농업기술센터의 역할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미생물 수요가 계속 늘고 있지만 공급이 부족하고, 임대 농기계 훈련장도 부족하다. 토양점검과 신기술보급, 도시농업 활성화 등 대구 지역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기술센터 확장 이전이 필요하다. 센터 확장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도전할 때 가능성이 열린다. 앞으로 대구광역시 농촌지도자회 회원들과 함께 농업을 발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취임 이후 대구시연합회의 봉사활동이 다른 시,도 연합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회장 취임 이후 농촌지도자회 회원들과 함께 농촌일손돕기 봉사활동과 금호강변 환경정화 자원봉사, 대구김장축제 자원봉사 활동 등을 했다. 사실 다른 농촌지도자회에서도 봉사활동을 많이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봉사활동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껏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내가 사는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봉사활동을 한다. 그러다보니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회원도 많고 활동에 임하는 자세도 좀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은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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