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섭 유기농가 (양평 소뿔농장 대표)

 

2000년 경기도 양평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거의 모든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유기농업을 하게 되었다. 자연과 사람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농사 방법이 유기농법이라는 말에 매료되었다. 퇴비를 넣어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렸다. 며칠 후 씨앗은 곱고 예쁘게 싹을 틔웠다. 움터 오르는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고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곧 온갖 잡초들이 작물보다 더 거세게 자라기 시작했고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작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새벽 별을 보며 밭에 나가서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농사를 갓 시작한 나로서는 달리 방법을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그해 농사는 잡초와 벌레의 습격으로 실패하였고 수입도 고작 몇 십 만원이 전부였다.


우선 땅을 비옥하게 만들라고 선배 농민들이 충고하였다. 산의 부엽토를 긁어와서 넣었다. 볏짚도 썰어 넣고 미생물을 만들어서 밭에 뿌렸다. 녹비작물을 심어서 갈아엎기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2~3년이 지나고나니 제법 농사가 되는 듯 했다. 비배관리에도 자신이 생겨서 여러 가지 채소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식량 생산을 위해 논을 임대하여 벼농사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확한 농산물을 팔 곳이 없었다. 유기농산물이라고 하더라도 벌레먹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일반 유통에서는 취급도 안 하였고, 농협을 찾아가서 부탁해도 제값 받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지역 유기농 생산자 조합에 가입하여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채소를 납품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협에서도 조건이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연중 공급을 요구했고 ‘품위’라는 기준을 내세워 겉보기에 크고 반듯한 것만을 요구했다.

 

생협의 요구 조건에 못 맞추면 거래가 끊겼다. 농민들은 연중 공급을 하기 위해 동절기 난방을 하여야만 했고 생협이 요구하는 품위를 맞추기 위해 유기농 인증을 포기하고 무농약이나 저농약 인증에서 머물렀고, 이미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민들은 무농약 인증으로 단계를 낮추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무농약이나 저농약 인증은 약간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건강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산 방법이 유기농이라고 배웠지만 실제 농사 현장에서는 유기농 인증 농가가 줄어들고 있고, 땅의 건강보다는 소비자와 소비자 단체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기농 정신에 위배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귀농한 이유와 농사를 짓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슈타이너 농법이라고도 하고 ‘Biodynamic’으로 알려진 농법을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 생산자 조직인 정농회 농민들이 ‘생명역동농업’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정농회 농민들이 만든 ‘생명역동농업 실천 연구회’에 가입하여 루돌프 슈타이너의 농사철학을 배우게 되었다.


하늘과 땅의 상호작용 속에서 식물이 자란다. 그동안 나는 땅과 퇴비, 씨앗에만 관심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다.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하여 퇴비를 넣고 쟁기질을 했다. 그곳에 씨앗을 뿌리고 액비와 소위 친환경자재라는 것들을 구입하여 작물을 키웠다. 나는 이것이 유기농업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은 본래 지구 밖 우주에서 오는 기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지구 안의 요소에만 머물러 있던 농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생명역동농업을 통해 지구 밖 우주로 확대되었다.

식물에게는 별 기운과 달 기운, 그리고 행성의 움직임이 지구 안의 요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식물의 일생, 모양, 열매의 색깔도 모두 지구 밖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농사라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작물, 이 셋이 관계를 잘 맺고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거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농부의 역할이다. 이것이 농사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근대 화학농법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농사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자본주의의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농업에 적용되면서 대량생산, 단작, 기계화로 바뀌었고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에 의존하는 농사가 되었다. 우리나라 농업도 6차 산업, 스마트 팜, 유전자 조작 작물 등 세계의 농업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이제 하늘과 땅과 식물의 유기적 관계는 끊어졌다. 땅은 생명력을 잃어서 병들어 가고 있고 그곳에서 나오는 식물도 본래의 생명력을 상실한 채 단순히 사람의 위장을 채우는 기능을 할 뿐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지점에서 고민이 된다.

정부의 지원이 보장되는 스마트 팜의 세계로 들어갈지 아니면 새로운 제 3의 나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인가가 나의 고민이다. “별총총 달휘영청 소뿔농장” 농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로 결정하면서 나의 농사 철학을 담은 농장 이름을 지었다. 농장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모든 물질이 농장 안에서 온전히 순환을 이룰 때 농장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사람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생명역동농업은 하나의 농법이 아니라 농사의 본래의 모습이고 식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의 꿈은 생명역동농업이 온전히 실현되는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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