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한국농업, ‘도시농업’ 적극 활용해야"

"부산화훼산업 발전시키는 박람회가 되도록 노력할 터"

 

농업이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 도시의 텃밭과 주말농장, 가정의 마당이나 화분 등 다양한 생활 공간을 활용해 취미와 여가, 체험을 목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해는 ‘도시농업’이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도시농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과 도시민의 참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20일 ‘부산 도시농업박람회’ 추진위원장으로 선임된 박대조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감사를 만났다.

 

농업인으로 7년 연속 추진위원장 선출, 영광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의하면 2010년에 15만3천명이던 도시농업 참가자수가 2015년엔 130만9천명으로 8.5배나 늘었다.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는 역사와 규모, 프로그램 등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의 도시농업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난 2005년 부산시 농업기술센터 주최로 열렸던 ‘부산 봄나물 축제’가 박람회의 모태다. 당시에는 부산지역 농업인들이 생산한 봄나물의 우수성과 안정성을 알리고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였다. 2010년 잠깐 ‘부산 녹색 생활 농업 박람회’로 명칭이 변경됐다가 2011년부터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로 다시 명칭을 바꾸고 도시농업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을 알리는 행사로 매년 4월 개최되고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전국 최고의 도시농업박람회 추진위원장에 7년 연속 선출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박람회 개최를 위해 매년 대학교수와 관계 공무원, 소비자단체, 농업단체 대표 등으로 추진위원단이 구성되고 위원들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하는데, 이분들 사이에 위원장은 농업인이 맡아야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박람회를 주최해온 역대 부산시장과 농업기술센터장들이 박람회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이끌어내기위해서는 농촌지도자 대표가 추진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개인적으론 직접 꽃 농사를 짓는 농업인으로 강동농협 조합장 8년, 강동동 주민자치위원장을 4년간 역임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걸 과분하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 도시농업 박람회’도 지난 해까지 7년 째 개최되고 있다. 똑같은 도시농업 박람회지만 두 도시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느 곳에서 열리는 박람회든 도시농업을 통해 생태환경 보호와 기후변화 대응, 안전한 먹거리 제공, 공동체 육성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 섣불리 단정하긴 조심스럽지만, 서울도시농업박람회는 도시인들의 여가활동 증진, 정서함양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는 처음 출발부터 인근 지역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판로개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것이 다르다.

 

농산물 판매 촉진이라는 박람회 목표 잊은적 없어

 

도시농업 박람회 준비를 하면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는가


-7년 전 처음 준비위원장을 맡을 때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박람회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도시민들이 농업과 농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 대해 잘 모른다. 아무리 우리 농산물이 좋다고 해도 어려서부터 수입농산물에 익숙한 세대는 이해를 못한다. 그런데, 박람회에 왔다 가면 우리 농산물이 얼마나 귀한지,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농부가 얼마나 수고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근교 농업인 중에 도시농업의 확산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농산물 판매가 줄어들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인데, 대안은 있는가

-부산 도시농업 박람회의 근본정신은 도농상생이다. 도시민은 농사체험을 통해 우리농산물을 지키고 애용하는 소비자가 되고, 농민은 도시민들에게 자신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판매할 기회를 얻는다. 특히 부산 근교는 우리나라에서 원예산업이 가장 발전된 지역이다. 그동안 박람회를 통해 꽃 소비를 늘릴수 있는 행사를 많이 추진했다. 농민들에게 발전된 원예기술을 전파하고, 직거래장터와 같이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행사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박람회를 통해 농업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 고령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후계인력 육성도 박람회의 과제다. 도시농업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런 조직들과 농촌지도자연합회 같은 농민단체들이 연대하면 앞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UR협상 반대 이후 농촌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서

 

농민과 농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다. 작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치는데 그동안 살아온 이력이 궁금하다

-내가 4남매 중 장남인데,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넌 무조건 과수원을 지켜야한다’고 하셨다. 농고를 졸업하고부터 농사를 지었다. 젊었을 땐 농사를 짓기 싫어서 가출도 했었다. 결국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 동생들 뒷바라지를 다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과수원을 벗어나 꽃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만 해도 꽃 농사짓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벌이가 괜찮았다. 젊은 나이에 농민후계자가되고 농촌지도자가 됐다. 사회 활동을 열심히하게 된 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부터였다. 농업,농촌이 무너지는게 뻔히 보이는데 그냥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가슴에 불이 붙었던 것 같다.

 

박람회 추진위원장도 그렇지만, 농협 조합장 8년, 주민자치위원장 4년을 역임했다는데, 일반 농민들은 쉽게 갈 수 없는 인생행로인 것 같다. 남다른 길을 걸어간 이유가 있는가.

-수입개방이라는 엄청난 파도 앞에서 무기력한 농촌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농민이 힘을 합쳐 살 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조합장을 할 때 얘긴데, 당시엔 농협에서 판매하는 농약값이 농약방 가격과 차이가 없었다. 담당자를 불러 직거래를 터보라고 했더니, 중앙회에서 공급하는 농약만 정해진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협동조합이냐고 호통치고 그날로 전국의 농약도매상을 직접 찾아다녔고, 결국 다른 조합보다 훨씬 싼 가격에 농민들에게 농약을 제공할 수 있었다. 마음먹고 나서면 아직도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눈 앞에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다.

 

축적된 모든 경험과 능력, 화훼산업 발전을 위해 쓸 것

 

카네이션 재배 1세대로 알고 있다. 평생 시설원예만 해 온 농사꾼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80년대 초부터 하우스를 짓고 카네이션 재배를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초창기엔 시설이나 기술이 부족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시설과 기술이 좋아졌지만 수입개방과 소비부진으로 나를 포함해 많은 원예농가가 힘겹게 농사를 짓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농사 외적인 문제들 때문에 농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부산경남화훼원예조합 조합원이다. 지금 화훼산업이 위기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뼈속까지 화훼 농사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화훼 농가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화훼산업 발전을 앞당기는데 힘을 더하고 싶다.
 


지난 해부터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감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농촌지도자 회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내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농촌지도자회라는 조직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가진 힘은 작아도 그 힘이 모이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함께 노력하는 농촌지도자 회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