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태풍 ‘콩레이’가 퍼 분 장대비로 마을 대부분의 가구가 침수돼 이곳이 과연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될까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다행히 제집은 다른 집들보다 지대가 높아 침수는 면했습니다만 이때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을 경우 무사하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불안감이 무시로 엄습하기도 합니다.


그저 집 마당에 잘 가꿔놓은 정원과 하얀색 전원주택에 반해 바로 옆 철길이나 하상이 낮은 하천 등을 잘 살피지 않고 이사 온 저의 불찰 탓이니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침수로 난리가 난 다음날 시장이 직접 마을회관까지 나와 반드시 걱정을 덜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갔습니다만 반신반의하는 심정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하천을 통과하는 철교 양 옆으로 난 길은 펜션과 마을의 다른 몇 가구로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그러다보니 철교 밑으로 뚫린 길 부분의 하천 축대는 차량통과를 원활히 하기 위해 축대 높이가 낮아지게 됐고, 이런 사정이 하천범람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하천을 뒤덮고 있는 갈대가 물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갈대가 수질개선의 일등공신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하천을 빽빽하게 덮고 있을 때는 다른 얘기가 됩니다. 축대높이가 낮은 곳은 갈대가 하상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물이 넘치게 만드니 갈대가 너무 무성해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쨌든 작년 12월부터 시에서 약속했던 1차 하천정비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포클레인 몇 대가 하천으로 투입돼 무성한 갈대 제거작업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상류에 자리 잡은 친환경퇴비공장의 영향을 아주 안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갈대숲 사이로 버들치 같은 1급수 어종들이 무리지어 다니곤 했던 곳이 이곳 하천이었습니다.


포클레인 기사들에게 1급수 어종 따위는 관심 밖 사항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긴 합니다. 며칠간 굉음을 울리며 하천바닥을 파헤치고 갈대를 들어낸 끝에 하천은 옷을 전부 벗어던진 썰렁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워낙 평소에는 물이 적게 흐르거나 가뭄이 심할 때는 건천이었는데 갈대마저 전부 들어내니 겨우 바닥에 붙어 흐르는 물에 버들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한쪽이 좋은 일은 다른 한쪽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멀리 개울 건너 모텔로 향하는 콧구멍다리가 사방댐 역할을 해 물이 마을로 역류하는 원인제공 중 하나여서 내년도 하천정비 사업에 제대로 된 교량으로 대체된다고 하니 모텔로서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요.


마을이장의 말로는 올해 예산에 책정될 금액이 수십억에 달해 상류부터 제방을 높이고 하상을 준설하게 되면 앞으로 상상을 초월할 엄청난 비가 내리지 않는 한 침수될 염려는 붙들어 매도 된다고 장담하니 믿을 수밖에요.


사람이 사는 곳은 대부분 다 비슷비슷한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산 좋고 물 맑은 터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은퇴 후 작은 텃밭을 가꾸며 노년을 보내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건 그저 우리가 그리는 꿈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곳은 그저 마음에만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너무나 많은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산속에서의 여유로운 삶도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지만, 마을에서 처마를 맞대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사는 삶은 또 그런대로 장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고 좀 더 편안하고 그림이 그럴듯한 곳을 찾아 이사 했더라면 이런 마음고생은 없었을 텐데 라는 후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나 다 그러려니 생각하면 불편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됩니다. 불안은 그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독버섯일 뿐이니 이를 다스릴 방법은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는 겁니다.


영하의 날씨에 앞마당 나무들도 화초들도 바싹 엎드리고 있습니다. 올 봄에는 원래 모습대로 그 자태를 뽐낼 텐데 저는 다시 신록의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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