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 근거 및 합리적 평가 있어야 재량권 인정

서울시·서울시공사, 섣부른 행정으로 소송비용 ‘펑펑’


도매시장 개설자가 재량권을 주장하며 무분별하게 상장예외품목을 지정해 왔던 관행을 바로잡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도매시장 개설자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있어 사실적 근거가 미비하거나 합리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는 재량권 위임 범위를 벗어난 ‘위법’이라는 판결이다. 이에 따라 매년 관행적으로 지정이 이어지고 있는 상장예외품목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입당근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이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과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상고를 “이유가 없다”면서 모두 기각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단은 “‘현저히 곤란’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도매시장 개설자에게 (상장예외품목 지정) 요건 해당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이상 도매시장 개설자의 1차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적어도 도매시장 개설자의 1차적 판단이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하여 이에 대한 합리적 평가를 거쳐 이루어졌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실적 근거가 미비되어 있거나 이에 대한 평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상장예외품목 지정이 된 경우에는 재량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나서 처분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인용하며 “상장수수료 등은 상장거래가 이루어지는 모든 농수산물에 해당하는 것이고, 달리 수입당근이 다른 농수산물에 비하여 그 수수료가 현저히 높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음으로, 상장수수료 등의 비용 때문에 중도매인이 수입당근을 매수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서울고등법원은 “수입당근에 관하여 소위 ‘기록상장’(중도매인이 수집한 상품에 대해 도매시장법인이 판매원표를 작성하여 상장거래로 처리하는 행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정할 객관적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한 일관성을 보였다. 1심과 2심, 대법원 판결까지 한결 같았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1심과 2심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대법원 상고까지 아집을 세우면서 소송비용을 허비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바나나와 포장쪽파 등의 행정소송 결과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매년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가락시장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농안법 시행규칙 제27조(상장되지 아니한 농수산물의 거래허가)는 “부류별 연간 반입물량 누적비율 하위 3%미만 품목”(제1호)와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중도매인이 소수인 품목”(제2호)에 대한 사실적 근거와 합리적인 평가가 바탕이 되어야만 “현저히 곤란하다고 도매시장 개설자가 인정하는 품목”(제3호)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결과는 가락시장의 개설자인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수입당근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주장하는 중도매인단체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하면서 발생됐다. 당시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입당근의 경우 상장예외품목 지정 요건에 부합되는 조건이 없었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재량권을 앞세워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던 도매시장법인과 농협공판장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대법원 뿐만 아니라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는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위법’을 지적하며 관련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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