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일생, 남북 농업교류 활성화에 바치겠다"

농촌지도자회는 70년이 넘는 역사 동안 과학영농기술 보급과 농촌계몽, 후계인력 양성 등의 활동을 통해 농업, 농촌발전에 기여해왔고 지금도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지속된 개방화와 국민 식생활 패턴의 변화, 산업으로서 농업의 위축과 같은 환경변화로 인해 농촌지도자회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앞으로 ‘농업인신문’은 농촌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는 농촌지도자 회원들의 다양한 삶을 소개하는 일련의 연재를 통해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발전시키며 농민을 잘살게 할 수 있는 ‘21세기형 농촌지도자’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편집자 주)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곽달규 한국농촌지도자 강원도연합회장은 지난해 10월25일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그가 농촌지도자로써 어떤 활동을 했기에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곽달규회장을 만나러 갔다.

--------------------------------------------------------------------------------------------------------------
 
 

 

■농사꾼에게 제일 중요한 건 농사 얘기죠. 먼저 어떤 농사를 짓고 계신지 소개해주시죠.


지난해 산마늘(명이나물)을 4만평 경작해서 30톤 정도를 수확했습니다. 전량 직거래로 판매했고 매출액은 2억5천만원 정도 됩니다. 감자도 8천평을 심어서 6천4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것저것 합해서 5만평 농사를 지어서 경비 빼고 한 1억5천만원 정도 순수익을 거둔 것 같습니다.

 

■전국 최고의 산마늘 농사꾼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강원도에서 산마늘을 재배하게 된 겁니까.


25년 전, 당시 평창군 임업연구소에 계시던 이근수연구원이 연구목적으로 울릉도 명이나물 모종을 갖고 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내가 재배해 볼 테니 모종을 나눠달라고 해서 50주를 받아 심은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산마늘에 대한 재배기술도 부족했고, 소비자들에게 산마늘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2006년에 처음 산마늘을 수확해서 봉평장과 진부장에 내다 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산마늘은 씨앗을 심어서 3년 뒤 본 밭에 정식을 하여 3년 후부터 수확이 가능한 작물입니다. 7년을 잘 가꾸고 기다려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특이한 작물이죠. 제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단골고객이 개인과 산마늘 가공업체를 합해서 한 800명 정도됩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기다려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산마늘처럼 처음부터 직거래 방식으로만 산마늘을 판매하면서 고객들에게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농촌지도자회 회원으로 활동하시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제가 농촌지도자가 된 지 벌써 46년이나 되었네요. 결혼 전엔 4-H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21살에 결혼을 하고 나서 농촌지도자(당시엔 ‘자원지도자’)부터 농촌지도자회 활동을 했습니다. 솔직히 제법 오랜 세월동안 농촌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혈기왕성한 청년이었고, 제 앞가림하기에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나이 마흔이 지나면서부터 이제껏 보이지 않던 세상도 보이기 시작하고 주변 이웃들과 고향 봉평이 처한 상황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농촌지도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봉평면에서 ‘평창 효석문화제’가 열릴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효석문화제’는 처음 ‘봉속회’라는 봉평면 출신들이 모인 친목단체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20여년 전 어느 날, 친목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효석생가가 봉평면에 있으니 이걸 활용해서 고향을 발전 시킬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때 제가 생각한 것이 이효석선생의 대표작이 ‘메필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이니, 생가 주변에 땅을 구해서 메밀꽃을 심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마침 농촌지도자로서 고향 발전을 위해 할 일을 찾고 있다보니 ‘메밀꽃’이라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봉속회’ 회원들과 함께 군수를 만나 보조금을 확보하여 이효석선생 생가 주변 땅 5천평을 매입하여 메밀꽃밭을 조성하고 백일장을 개최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 바로 ‘평창 효석문화제’입니다.
 
지난 해에 20회를 맞이한 평창효석문화제를 찾은 관광객이 41만명이고 경제효과가 150억원입니다. 이제 ‘효석문화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지역축제로 확실하게 자리잡았고, 그동안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도 평창군 농촌지도자회에서는 ‘효석문화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봉평면 농촌지도자 연합회장 당시에도 지역발전을 위해 큰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 소개해 주시죠.


제가 살고 있는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처럼 지내왔습니다. 봉평에서 홍천에서 시집 온 아낙들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로 가족처럼 지내던 동네가 바로 홍천군 내면입니다. 그런데, 홍천과 봉평을 가로막고 있는 고개가 너무 험해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꼼짝없이 갇혀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를 내버려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농촌지도자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당시 회원 중에 군대에서 측량병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신설 도로 계획도를 만들어 사방팔방 쫓아다녔습니다. 수 년간 군수와 국회의원 등 힘있는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며 설득과 읍소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02년에 공사에 착공해서 2009년에 ‘평창 봉평~홍천 내면’간 지방도를 개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도로로 인해 50분 걸리던 길이 10분으로 줄어들면서 주민 생활이 그만큼 편안해졌고, 외부 관광객도 훨씬 늘어나게 됐습니다.

 

■지난 해 3월에 농촌지도자 강원도연합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셨고 전국농촌지도자 대회를 강원도에서 개최했습니다. 당시 강원도가 전국대회를 유치한 것이 화제가 됐었는데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제가 지도자연합회 평창군회장을 맡았던게 2015년입니다. 3년간 군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봉사’였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21살 청년이 결혼과 함께 분가해서 2천500평 농사를 지으면서 주변의 많은 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자식들 잘 키우고 농사로도 성공했으니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주변과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생각했었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군 연합회 기금으로 1천만원을 기부하고 열정을 다하면서 군 연합회 회장직을 하다보니 조금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맘이 들더군요.

그래서 2017년 말에 도 연합회 회장 출마를 결심하고 도청과 군청의 실무자를 만나 전국대회 개최 가능성을 타진했었습니다.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아주 가망이 없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도 연합회장 출마 공약으로 ‘전국 농촌지도자대회 강원도 유치’를 내세웠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강원도연합회 소속 군 회장단과 함께 최문순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예산지원에 대한 확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 후에는 일사천리로 전국대회를 유치 관련 업무가 진행됐습니다. 평소에 강원도연합회 각 군 회장님들과 회원들이 모범적인 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연합회장과 중앙연합회 이사로서 남은 임기 동안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지난 해 3월에 강원도연합회장에 당선되던 날, 앞으로 중앙연합회와 도 연합회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중앙연합회 22대 새 집행부 인수위원으로 위촉되어 다른 인수위원들과 함께 연합회 살림을 살펴본 것도 조금이라도 더 규모있고 알뜰하게 예산을 집행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중앙연합회와 도연합회가 농업과 농촌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북한과의 농업교류 추진입니다. 이미 남북간 스포츠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농업교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최근 남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된 만큼 이 기회에 남북간 농업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앞으로 남은 일생동안 농촌지도자 쌓아온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북한에 현대화된 농업기술을 전파하고 각종 병해충 방제와 식량증산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최문순 강원도지사께서도 남북간 농업교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강원도연합회 시군연합회장단과 일반 회원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 남북간 농업교류가 강원도 농업 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국의 농촌지도자 회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46년간의 농촌지도자 생활을 회상하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매번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협력’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산마늘농사로 일정한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 것도, 농촌 지도자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 10만 농촌지도자 회원분들도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주변의 좋은 분들과 ‘협력’하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